서울 송파구 가락사회복지관, 품앗이 공동육아 프로그램으로 사교육비 ‘뚝’
학부모들 모아 스터디팀 구성
매월 2만원씩 운영비 지원
이웃집 방문 예절교육 효과도
“자∼, 여기는 hand(손), 또 여기는 leg(다리).”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의 한 아파트에서 이지민 씨(37·여)가 여섯 살배기 아이 세 명을 전지 위에 눕혀 놓고 몸의 모양을 본떠 종이에 그려 주며 이같이 말했다. 크레파스로 손을 그릴 땐 “hand”, 다리를 그릴 땐 “leg”라고 말하면 아이들이 큰 소리로 따라했다. 이 씨의 아들 성정모 군과 이웃에 사는 김용우 씨(41·여)의 아들 서동원 군, 김미라 씨(35·여)의 딸 김다영 양은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이처럼 어머니들에게 영어를 배운다. 세 어머니들은 송파구 가락사회복지관에서 시행하는 ‘품앗이 공동육아 프로그램’에 참여해 1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세 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 엄마와 함께 놀며 배워요
품앗이 교육은 같은 동네에 사는 학부모 3, 4명이 한 조를 이뤄 아이들에게 영어를 비롯해 필요한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가락사회복지관에서는 유아 사교육비를 줄이자는 취지로 2006년부터 매년 초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학부모들을 모아 팀을 짜 주고 있다. 지금은 학부모들이 스스로 팀을 짜와서 참가 신청을 하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매달 2만 원을 운영비로 받을 수 있고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작성한 우수 사례를 모은 책자도 받을 수 있다.
이 씨 등 3명은 스스로 팀을 꾸렸다. 작년 말까지 세 아이가 같은 영어학원에 다닌 게 인연이 됐다. 김용우 씨는 “영어학원에 다녀오고 나서 뭘 배웠는지 물어봐도 아이가 수업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며 “내가 스스로 가르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품앗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선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부터 바꾸기로 했다. 모든 수업은 놀이하듯 가르친다는 ‘원칙’을 세웠다. 영어단어 ‘roll’을 가르칠 땐 ‘엄마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마룻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어린이용 영어 동화책 ‘Ginger Bread Man(생강빵맨)’을 가르칠 땐 아예 하루 날을 잡아 복지관 주방에서 과자를 구워 가며 단어를 익히기도 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맞는 교습방법을 찾기 위해 수시로 만나 의견을 교환한다. 유아교육에 도움이 되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함께 찾아보기도 하고 아이들 손잡고 따라 나간 놀이터에서 토론을 하기도 한다. 아이 교육에 도움이 되는 강좌가 있으면 시간을 내 함께 배우러 가기도 했다.
놀면서 배운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며 놀았다. 이 씨는 “노래를 배우고 온 날은 계속해서 배운 노래를 부르고 영어 동화를 읽은 날은 그날 저녁부터 그 책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아이들은 이날 수업이 끝난 뒤에도 엄마 품에 안겨 영어 동화책을 읽고 영어 노래를 불렀다. 효과는 훨씬 좋아졌는데 사교육비 부담은 많이 줄었다. 작년까지는 학원비로 한 달에 15만 원 정도 들었지만 이제는 유치원에 보내는 것 외에는 일절 사교육비가 들지 않는다.
○ 예상 못한 소득도
김미라 씨는 “아이들이 품앗이 교육을 받으면서 영어 외에 다른 것들도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예절. 친구들의 집을 돌아가며 방문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집에 들어가면서 친구의 어머니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간식을 받았을 땐 반드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해야 한다는 점도 자연스레 터득했다. 성 군과 서 군, 김 양이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더 각별한 사이가 된 것도 소득이다.
학부모들이 발견하지 못한 소득도 있다. 복지관 명수진 사회복지사는 “어머니가 당당한 모습으로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부모에게 존경심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처음 품앗이 교육을 시작할 때는 학부모 간 의견충돌로 모임이 와해되는 경우도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품앗이 교육이 짧은 시간에 중단되면 교육 효과도 없고 아이가 혼란을 느낄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품앗이 교육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복지관(02-449-2342)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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