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국에 온 태국인 유학생 타차폰 와자삿 씨(사진 왼쪽)와 케냐 출신 유학생 가췌이 조세핀 씨.
《전국지방동시선거일이던 2일 서울 이화여대 이화캠퍼스센터(ECC) 지하 1층 카페. 임시 공휴일인 이날도 테이블은 혼자 책을 펴놓고 영어공부를 하거나 3∼6명씩 그룹을 지어 과제를 하는 학생들로 붐볐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이처럼 쉬는 날에도 학교에 나와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4년 동안 한국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아, 이런 모습이 바로 한국 학생들만의 경쟁력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타차폰 와자삿 씨)
국내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이 털어놓는 생생한 체험담을 다루는 KBS2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던 태국인 유학생 타차폰 와자삿 씨(22·여·이화여대 방송영상학과 졸업)와 그의 절친한 친구인 케냐 출신 유학생 가췌이 조세핀 씨(24·여·이화여대 컴퓨터정보통신학과)를 만났다.
그들은 한국에서의 유학생활을 소재로 흥미진진한 ‘수다’를 펼쳤다. 외국인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 대학생들의 모습은 어떨까. 또 한국 대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그들은 스스로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열공’ 문화에 자극을 받다
어렸을 때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타차폰 씨. 그는 TV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수준 높은 한국의 방송을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2006년 한국에 유학을 왔다. 이화여대에 수업을 들으러 간 첫날, 건물에 꼭 하나씩은 있는 열람실과 학교 곳곳에 있는 책상을 보고 생소함을 느낀 타차폰 씨. 얼마 지나지 않아 생소함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개강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한국 학생들은 중간고사에 대비한 공부에 들어갔던 것이다.
특히 충격을 받은 것은 1학년 1학기 때 수강한 ‘영어Ⅰ’ 수업. 타차폰 씨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 학생보다 좋은 성적을 받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학기가 끝나고 받은 성적표에는 ‘C+’라는 성적이 적혀 있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타차폰 씨는 처음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친구인 조세핀 씨와 함께 한국 학생들처럼 공부했다. 난생 처음 도서관에서 밤을 새워 공부도 해봤다. 공부가 너무 힘들어 며칠을 울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한국 학생들이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너무 힘든 탓에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공부하고 있지?’란 의문까지 들었어요. 자꾸 ‘왜’를 생각하다 보니 점차 제가 공부하는 이유가 명확해지더라고요. 뚜렷한 목표가 생기고 나선 공부도 재미있게 느껴졌죠. 이제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심심함을 느낄 정도예요(웃음).”(타차폰 씨)
○ 성형을 결심하다
타차폰 씨와 조세핀 씨가 경험한 두 번째 충격은 바로 ‘화장’과 ‘하이힐’. 주위에 거의 모든 학생이 예쁘게 화장을 한 채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세련된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놀라웠다.
“평소 ‘예쁜 여자는 공부에 투자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을 거야’란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공부에 집중하기에도 바쁠 텐데 자기관리도 철저하게 하는 한국 학생들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어요.”(조세핀 씨)
타차폰 씨에겐 특히 성형사실을 당당하게 말하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태국에선 성형수술을 한 사람을 보면 대부분 다짜고짜 ‘너 어디 수술했느냐’고 물어봐요. 성형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없더라도 스스로 성형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이 쓰여 성형을 결심하지 못하곤 하죠. 한국은 달랐어요. 성형은 스스로 자신감을 갖기 위한 ‘투자’로 여기는 학생이 많더라고요.”
‘아나운서가 되는 데 풍부한 지식과 경험은 물론 외모 역시 중요한 경쟁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 타차폰 씨는 ‘용기’를 얻고 눈과 코의 성형을 결심했다. 타차폰 씨는 “수술 결과에 매우 만족한다”면서 “예뻐진 덕분에 방송에 나갈 때나 생활을 할 때 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다
타차폰 씨와 조세핀 씨는 “한국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필요한 ‘경험’으로 생각하는 점도 놀라웠다”고 입을 모았다.
뚜렷한 목표를 갖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을 ‘벤치마킹’하기로 결심한 두 사람은 각자의 분야에서 새로운 경험에 도전키로 했다.
조세핀 씨의 도전은 자신의 전공 지식을 케냐의 친구들과 나누는 것. 2008년 여름방학에는 개발도상국에 포토샵,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등 컴퓨터 프로그램의 교육을 지원하는 ‘코리아 인터넷 볼런티어’에 참가해 케냐의 전문대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직접 교육을 하면서 누군가와 지식을 나누는 것이 즐거운 일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이런 경험을 토대로 ‘케냐의 정보기술(IT)산업이 발전하도록 나와 똑같은 꿈을 꾸는 학생들의 멘터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고 했다.
타차폰 씨의 도전은 바로 영화에 출연한 것이다. 올해 4월 지인의 소개로 태국 영화 ‘노잉 유, 노잉 미’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만약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방송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없었을 거예요. 특히 한국 학생들에게서 보고배운 열정은 유학생활에 큰 힘이 됐어요. 세세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한국 학생들처럼 저도 더 열심히 꿈을 향해 달려갈 거예요(웃음).”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태국 유학생 타차폰 와자삿 씨가 말하는 한국에서의 첫 경험들!
1. 24시간 열려있는 도서관에서 시험공부하기 2006년 한국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한국 학생들의 ‘열공’에 자극을 받았다.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한 그는 난생처음 24시간 열려있는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며 공부했다. 와자삿 씨는 “태국에는 대부분의 도서관이 오후 8시면 문을 닫는다”며 “밤을 새워 공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가끔은 펑펑 울기도 했다”고 했다. 2. 해양경찰청 통역 아르바이트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을 쌓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국 학생의 모습을 보고 ‘벤치마킹’하기로 결심한 와자삿 씨. 그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아르바이트로 2008년 해양경찰청에서 통역을 한 경험을 꼽았다. 그는 “잘할 수 있을까 너무 걱정이 돼 해양과 해양경찰청과 관련된 한국어 단어와 태국 단어 리스트를 만들고 밤을 새며 공부했다”고 했다.
3. 성형수술 성형사실을 당당히 밝히고 자신감을 얻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에 반해 성형수술을 결심한 와자삿 씨. 그가 받은 수술은 눈 안쪽에 ‘몽고주름’을 제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눈이 커 보이도록 하는 ‘매직 앞트임 시술’과 콧등을 세우고 ‘비중격 연골’(코뼈 아래 있는 연골)을 코끝에 넣어 코 모양을 입체감 있고 날렵해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3D 코성형 시술’이었다. 와자삿 씨의 수술을 집도했던 미고성형외과 이강원 원장은 “처음 와자삿 씨가 병원을 찾았을 땐 귀여운 인상이긴 했지만 전체적인 이목구비가 또렷하지 않아 TV 화면에선 부각되지 않는 얼굴이었다”면서 “방송출연의 꿈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선 이목구비를 또렷하게 만들어 TV 화면에 나왔을 때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 수술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