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국 기념물 전국에 67개… 빛나는 전적-희생정신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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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7일 03시 00분


■ 6·25 60년, 참전국 국내 현충시설들

각국 특성 담아 격전지에 세워
하버드大 다니다 달려온 서위렴2세
서울 은평구, 이달 22일 동상 제막
일 부 도시계획에 밀려 몇차례 이전
관리주체도 지자체-軍 등 제각각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은평평화공원에는 1950년 9월 22일 녹번리전투에서 산화한 윌리엄 해밀턴 쇼 2세 대위(한국명 서위렴 2세)의 자그마한 추모공간이 최근 마련됐다. 새로 제작된 동상 제막식이 22일 열린다. 쇼 대위는 미국 선교사인 서위렴 1세의 아들로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났고 광복 후 해군사관학교 교관을 지내기도 했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쇼 대위가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도중 전쟁 소식을 듣고 ‘한국 친구들을 위해’ 한걸음에 달려왔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 주아니타 로빈슨 쇼는 쇼 대위가 숨진 뒤에도 한동안 한국에 남아 대학교수를 지냈다. 쇼 대위는 현재 그의 부모와 함께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외국인묘원에 잠들어 있다.

국가보훈처의 ‘6·25전쟁 참전국별 현충시설 현황’ 자료에 따르면 21개 참전국(16개국 파병, 5개국 의료지원)의 국가현충시설은 기념관 동상 기념비 조형물 등 모두 67개다. 설립 취지에 따라 참전국 기념비와 전적비, 개인 기념비, 충혼탑 등으로 나뉜다. 그러나 국가현충시설로 등록되지 않은 크고 작은 기념비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브라이언트 무어 장군 추모비(경기 여주군), 태국군 38선 돌파 기념비(경기 연천군) 등 5개 현충시설은 6·25전쟁 동안 세워졌다. 2000년대 들어서도 미국 참전전우기념비(경남 하동군) 등 4개가 재건되거나 새로 만들어졌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30개로 가장 많다. 현충시설은 지방자치단체와 군부대, 군 단체, 기념사업회, 주한공관 등이 세워 관리하고 있다.

○ 격전지에 세워진 참전국 기념비

국가 단위의 참전국 기념비는 1966년 필리핀 참전비를 시작으로 20개가 세워졌다. 기념비의 위치는 해당 국가의 주요 전투지역이나 현지 사정 등을 고려해 정해졌다. 예를 들어 터키군은 1950년 12월 평양 북쪽에서 중공군을 맞아 격전을 치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 지역에 기념비를 세울 수 없어 1·4후퇴 후 처음으로 중공군에 반격해 승리를 거둔 김양장리 전투지(경기 용인시)에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의 모양은 각국의 특성을 담았다. 공군만 참전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념비에는 비행기 꼬리 모양을 반영했다. 네덜란드 기념비는 풍차 모양을 띠고 있고, 그리스 기념비는 신전을 연상시킨다. 벨기에 기념비는 벨기에 현지에 있는 한국전쟁참전기념비를 토대로 만들었다. 1975년 10월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 세워진 미국군 참전기념비에는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기간 미국의 아들들이 바친 고귀한 희생과 빛나는 업적을 기리고 그들의 영령을 길이 추모하기 위해 여기에 비를 세워 기념하노라’라고 적혀 있다.

○ 사연을 담은 개인 기념비

특정인을 기리는 기념비에는 다양한 사연이 담겨 있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여고 동쪽 야산 기슭에는 유엔한국위원단 인도 대표 우니 나야 대령의 기념비가 서 있다. 나야 대령은 1950년 8월 12일 경북 칠곡군 왜관지구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시찰하다 지뢰가 터져 숨졌다. 그의 기념비는 조재천 당시 경북지사의 주도로 1950년 12월 세워졌다. 현재 보훈처에 등록된 참전국 현충시설 중 가장 오래된 기념비다. 대구 수성구청은 “나야 대령의 부인 나이야르 여사가 1967년 10월 이곳을 다녀갔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는 존 콜터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다. 콜터 장군은 1950년 포항전투에서 미 육군 제19군단을 지휘했고 미8군 부사령관을 지냈다. 그는 1952∼58년 유엔 한국재건단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 재건에도 힘썼다. 대구 동구 검사동 공군부대에는 미 공군 딘 헤스 대령의 기념비가 있다. 전투기 조종사인 헤스 대령은 1950년 7월 초부터 51년 5월 말까지 250여 회나 출격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위해 ‘신념의 조인(信念의 鳥人)’이라는 휘호를 써주기도 했다.

프랑스군 의무대장 쥘 장루이 소령의 동상은 1986년 강원 홍천군 두촌면에 건립됐다. 그는 1950년 11월 한국에 온 뒤 이동병원 의무대장으로 원주 등 5개 지구 전투에서 부상병을 돌보면서 민간인 진료에도 힘썼다. 그러나 1951년 5월 8일 한국군 부상병 2명을 치료하고 복귀하다 지뢰를 밟고 숨졌다. 그의 고향인 사나리쉬르메르 시는 지난해 홍천군과 문화 교류, 특산물 교역 등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밖에도 경기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는 1951년 1·4후퇴 당시 부하 2명과 함께 육탄으로 전차를 잡고 장렬히 전사한 미군 분대장 케니 상사의 전공비가 서 있다.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동상은 인천상륙작전의 전장이 내려다보이는 인천 자유공원에 있다.

○ 이전 잦은 참전기념비

쇼 대위의 기념비는 1956년 쇼 대위가 전사한 녹번동에 세워졌다. 백낙준, 김활란 등 명사들이 건립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도시계획으로 철거 위기에 놓이자 쇼 대위 제자인 해사 2기생들이 2001년 응암어린이공원으로 옮겼다. 이어 은평평화공원이 만들어지면서 두 번째로 이사했다. 콜터 장군의 동상도 1959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처음 세워졌으나 1977년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으로 옮겨졌다.

현충시설물은 관리 주체가 자치단체, 군 단체, 군부대 등으로 분산돼 있어 체계적인 관리가 쉽지 않다. 나야 대령의 기념비는 건립 반세기를 넘긴 2003년 뒤늦게 현충시설로 지정됐고, 헤스 대령 기념비도 40년 가까이 흐른 2002년에야 지정됐다. 현재 보훈처가 관리하는 6·25전쟁 현충시설은 850여 개로 올해 관리 예산은 27억여 원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안내표지판 설치, 관리비 일부 등을 지원하고 있으나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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