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6월에 접어들면,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중엔 대입 ‘반수(半修)’를 결심하는 학생들이 생겨난다. 지금의 대학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전공이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반수를 결심하는 학생들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6개월도 안 되는 기간을 공부해서 고3 및 재수생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 때문이다. 게다가 ‘돈을 들여 반수했는데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엄습해온다. 이런 이유로 일부 학생은 부모 몰래 반수를 감행한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이모 씨(19)는 서울의 K대에 다닌다. 고등학교 때 이 씨의 내신 성적은 평균 1, 2등급. 그런데 수능 당일 이 씨는 긴장한 탓인지 안경을 집에 두고 시험장에 도착했다. 이 씨는 “시험을 어떻게 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능 점수는 고3 때보다 영역별로 대부분 한 등급 떨어졌다. 고등학교 때 줄곧 꿈꿨던 대학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이 씨는 스스로가 왠지 초라하게 느껴졌다.
“제가 목표로 삼았던 대학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나 점퍼를 입고 다니는 학생들을 볼 때면 무척 부러웠어요. 그때마다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됐죠.”
이 씨가 올해 초 “재수하겠다”고 얘기를 꺼냈을 때 부모는 반대했다. “굳이 재수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응이었다. 얼마 전 이 씨가 “지금이라도 반수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을 때도 부모는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써야 할 시간에 차라리 수능 공부를 더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9월 모의고사에서 언어, 수학, 외국어, 사회탐구영역 모두 1등급인 성적표를 보여드리면 그땐 부모님도 이해해주지 않을까요? 9월 모의고사를 잘 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이 씨는 당분간 부모가 그의 반수를 눈치 채지 못하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과외 아르바이트까지 관두면 부모님이 의심하실 것 같아 일단 과외는 계속할 생각이에요. 그 대신 과외 준비를 더 열심히 해서 반수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하려고 해요.”
인터넷강의 수강, 문제집 구입 등 반수에 들어가는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까?
이 씨는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해결하고, 그것도 안 되면 부모님에게 ‘국제무역사 자격증 시험 대비 학원에 다녀야 한다’고 거짓말해 비용을 마련한다”고 했다.
휴학을 ‘대놓고’ 할 수가 없는 이 씨는 성공적인 반수를 위해 2학기 수업 시간표도 전략적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월요일과 금요일은 비워놓고 수업은 ‘화, 수, 목요일’에만 집중적으로 들을 예정. 여기에 온라인으로 수강하는 사이버 강의도 신청해 학교에 가는 횟수를 줄이려고 한다. 계획대로라면 일주일에 ‘금, 토, 일, 월요일’ 나흘은 고3 때처럼 ‘수험생 모드’로 수능 공부를 할 수 있다.
“비록 부모님 몰래 반수를 하고 있지만,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에요.”(이 씨)
서울 동작구에 사는 최모 씨(19)는 지방의 한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최 씨는 학교보다는 전공에 불만이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자신의 꿈과 전혀 무관한 학과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최 씨는 참을 수 없었다. 지난해 수능 직후 부모에게 “재수 여부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지만, 부모는 “네가 잠이 많고 의지가 약해 성공확률이 낮다”고 반대했다.
부모 몰래 반수하기로 결심한 최 씨는 틈틈이 수능 영어 단어장을 외운다. 대학 강의가 없는 시간엔 학교 도서관에 가서 수리영역 인터넷 강의를 본다.
“아직 고3 때 쓰던 참고서나 문제집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어요. 3월 모의고사를 한 번 훑어본 적도 있고요. 부모님께서 ‘자리를 차지한다’며 버리려 했지만 ‘아는 후배 주려고 보관한다’고 둘러댔어요.”
부모와 떨어져 있는 지금은 ‘마음껏’ 수능 공부를 할 수 있지만, 부모와 함께 있게 되는 여름방학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최 씨는 걱정이다. 그는 “방학 땐 부모님께 ‘토익 학원에 다니겠다’고 말씀드린 뒤 대입 단과반 수업이라도 들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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