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참여-은폐-타협… ‘월드컵 즐기기 3색 모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5일 03시 00분


《아, 이토록 ‘잔인한’ 월드컵도 있던가. 고등학생들은 괴롭다. 2010 남아공 월드컵 기간이 기말고사 준비기간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3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까닭에 경기를 속 편하게 즐길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4년에 한 번인 월드컵을 포기하기란 아쉬운 일. 고교생들은 부모의 감시를 피해 월드컵을 즐기거나 기말고사와 월드컵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데….》
■ 은폐형

기말고사를 ‘쿨(cool)’하게 포기하고 월드컵을 즐기는 유형이다. 이들은 어머니의 감시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월드컵 개막 전 일찌감치 세운 ‘작전’을 실행에 옮긴다.

고3 이모 군(17·서울 은평구). 한 달 전 어머니에게 “이제 정신 차리고 공부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주말이면 꼬박꼬박 독서실에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매주 화요일에는 반에서 1∼3등을 유지하는 친구 집을 찾아가 밤을 새우며 ‘개인과외’를 받았다. 하루 3시간 이상 공부해 본 적 없는 이 군이 개과천선한 걸까? 물론 아니다. 다음은 이 군의 설명.

“한국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 거리응원을 가기 위한 ‘위장전술’이에요. 주말에 독서실에 가는 이유는 12일 열린 그리스전에 대비한 거죠. 독서실 간다면서 거리응원에 참여했거든요. 친구에게 개인과외를 받는 날을 굳이 화요일로 한 이유도 수요일인 23일 새벽에 열리는 나이지리아전 때 거리응원을 가기 위해서죠. 과외를 해주는 친구가 성적이 좋아서 어머니의 무한신뢰를 받고 있지만 사실 저와 ‘한통속’이라서 걸릴 염려가 절대로 없어요.”

실속형

기말고사 준비와 월드컵 관전을 동시에 노리는 유형이다. 이들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기말고사를 잘 보는 것이므로 거리응원으로 밤을 새우는 과도한 관전 행위는 자제한다. 하지만 한국대표팀의 경기는 무조건 ‘본방사수’(‘본 방송을 반드시 본다’는 뜻의 신조어)한다. 자칫 잘못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공부만 하는 고리타분한 아이’로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고3 강모 군(18·서울 강동구)은 독서실에서 월드컵을 즐길 계획. 비록 혼자이지만 최대한 쾌적한 환경에서 관전하기 위해 7인치 크기의 액정과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기능이 갖춰진 휴대용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를 최근 장만했다. 물론 어머니에게는 “기존 PMP는 화면이 너무 작아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고 둘러댔다. 또 6000원이란 ‘거금’을 투자해 PMP를 비스듬히 세워놓는 전용 거치대도 구입했다.

“월드컵을 친구들과 함께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지만 이제 막 오르기 시작한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요. 그 대신 경기를 하는 두 시간 만큼은 PMP로 최대한 즐길 생각이에요.”(강 군)

적극형

‘놀 때는 확실하게 놀자’란 마음가짐으로 월드컵을 적극 즐기는 유형이다. 한국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무리를 지어 거리응원에 동참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마다 삼삼오오 모여 ‘전문가급’ 지식을 공유하며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도 한다. 일부 여학생은 월드컵 분위기에 휩쓸려 남학생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응원에 참여하기도 한다.

평소 한 팀이 ‘11명’인 것도 모를 만큼 축구에 관심이 없던 고2 장모 양(17·서울 종로구).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그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친구 5명과 함께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앞으로 거리응원을 나갔다. ‘이왕 가는 거 후회 없이 놀자’란 생각에 4000원을 들여 친구들과 빨간 티셔츠와 머리띠를 맞췄다. 장 양은 기말고사를 포기한 걸까?

“기말고사도 잡아야죠. 응원 끝나고 친구들과 도서관으로 가서 주말 내내 기말고사 공부를 했어요. 혹시 피곤하다는 핑계로 도서관에 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10분 늦을 때마다 1000원씩 벌금을 내기로 규칙을 정했어요.”(장 양)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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