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건설사 아파트에 ‘짝퉁’ 벽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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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 업체서 美産 고급 대신 중국제 시공
일부 건설사는 준공 보류 우려… 알고도 쉬쉬

유명 건설사 아파트 신축 현장에 수입 정품과 비슷한 저가의 ‘짝퉁’ 인테리어 마감재를 납품한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15일 롯데 신동아 현대 GS 등 4개 대형 건설업체가 시공하는 신축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에 미국산 고급 직물 벽지 대신 질 낮은 가짜 제품을 납품해 시공한 혐의(사기 등)로 하도급 업체 대표 최모 씨(57) 등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가짜 직물 벽지를 제조한 구모 씨(43) 등 3명과 유통업자 곽모 씨(45)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미국산 고급 직물 벽지와 색상, 모양이 비슷한 값싼 직물 벽지 18kg을 중국 및 국내 제조공장에서 생산해 총 1800여 채의 주방, 현관 등의 벽지 마감재로 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아파트는 서울의 현대 서울숲힐스테이트, GS건설 충무로자이, 경기 신동아 파밀리에, 대구 롯데캐슬 등 유명 고가 아파트로 조사됐다. 가짜 직물 벽지 가격은 1야드(약 90cm)에 1만6000원으로 수입 정품(야드당 3만7000원)의 43% 수준이었으며 이를 통해 총 4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하도급 업체 등이 챙겼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가짜 직물 벽지 제조업체들은 하도급 업체가 원가 절감의 압박에 시달린다는 점을 알고 모델하우스에 적용된 벽지와 동일한 제품을 싼값에 공급해 주겠다며 접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은 시공사와 아파트 입주자들이 수입 정품 근거를 요구할 경우 입항일, 반입일, 수량 등을 위조한 관세청의 ‘수입신고필증’을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조방법은 날짜 등의 숫자를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어 오려 붙인 뒤 다시 복사하는 것이었다.

또 일부 건설사는 정품이 아닌 마감재가 시공된 사실이 드러나면 준공 승인이 보류되고 회사 이미지가 실추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가짜 마감재 납품업체와 정품 수입업자 간에 중재를 하는 등 문제를 덮는 데 급급했다. 이 과정에서 사건 무마 대가로 업체 간 금품도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해당 건설사들이 수입 마감재에 대한 서류를 확인하는 검수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하도급 업체와 공모하는 등의 위법행위를 저지른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같은 문제가 다른 아파트 신축 현장에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적발된 가짜 직물 벽지 제조업체 등을 상대로 다른 하도급 업체에 추가 납품한 사실이 있는지 등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짝퉁 직물 벽지는 전문가조차 구별해 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시공사 등은 수입 마감재의 수입신고필증, 원산지증명서, 납품확인서 등의 관련 서류를 꼼꼼히 확인해야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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