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골 마을에서 7명이 희귀질환인 재생불량성 빈혈로 사망하자 미국 국립보건원(NIH) 소속 기동의학팀이 조사에 나선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100만 명당 2∼6명꼴로 발병하는 희귀질환. 인구가 10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이 질환으로 7명이나 거의 같은 시기에 사망했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의사와 수사관으로 구성된 기동의학팀은 조사를 벌여 재생불량성 빈혈의 집단 발병 원인이 새우라고 결론짓는다. 새우와 재생불량성 빈혈,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이 내용은 드라마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에서 다뤄진 에피소드였다. 기동의학팀은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모두 다른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같은 생선가게에서 새우를 사다 먹었다는 것임을 알아낸다. 조사 결과 이 새우에서 재생불량성 빈혈을 발생시킬 수 있는 클로람페니콜이 검출된다.
클로람페니콜은 독일 화학자 파울 에를리히가 1947년 토양 방선균에서 추출한 항생제다. 클로람페니콜은 항균 작용을 인정받아 가축 질병 치료와 예방에 대량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이 물질이 인체의 골수 조직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보고가 제기됐다. 이로 인해 식용동물에 대한 클로람페니콜 사용은 전면 금지됐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새우와 꿀 등 몇몇 제품에서는 여전히 클로람페니콜 성분이 검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상한 것은 클로람페니콜은 가축들에게 사용한 항생제이지, 새우나 벌에게는 사용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들에게서 클로람페니콜이 검출되고 있는 것일까. 학자들은 환경오염의 결과로 보고 있다. 수년간 농가에서 대량으로 사용한 클로람페니콜 잔류물이 동물의 분변을 통해 배출됐고, 이들의 배설물로 만든 퇴비는 비료나 새우 양식장의 영양물질로 흔히 이용됐다.
퇴비에 들어 있는 영양분을 물 속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섭취하는 과정에서 클로람페니콜의 잔류물 역시 흡수됐다. 이들이 동물성 플랑크톤과 새우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을 거치며 생물 농축 현상이 일어나 인체에 치명적 질환을 일으킬 만한 수준의 클로람페니콜을 함유한 새우가 식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환경오염의 아주 무서운 공포 중 하나는 우리가 과오를 깨닫게 된 이후에도 그 여파가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염물질은 아주 오랫동안 환경에 잔존하고, 생태계 먹이사슬을 통해 결국 인간에게 해를 입힌다. 환경오염 문제에 있어서 대책보다는 예방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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