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서울교육은 새로운 시험 무대에 오른다. 사상 첫 진보 성향 교육감 시대가 시작된다. 출발 선상에서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는 취임을 사흘 앞둔 28일에도 이어지는 보고와 회의로 분주했다. 취임준비위 사무실에서 만난 그의 손에는 당선 뒤 20여 일 동안 그가 다듬어온 서울교육 청사진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신중했다. 질문을 받으면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았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반복해서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는 2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실질적’, ‘전면적’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실제 학교 현장의 요구를 듣는 일과 이를 전면적으로 추진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믿는 듯했다. 그는 당선 후 일선 학교를 방문해 교사와 학부모들을 만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현장만큼 좋은 선생님이 없더라”는 것이 현장 방문에서 그가 얻은 수확이었다. 취임 후 가장 중요한 목표로 그는 ‘학생과 교사가 모두 가고 싶어 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을 꼽았다. 그러나 자신의 교육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지나치게 급격한 정책 추진을 하지는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육정책은 충분한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며 “아무리 좋은 대안이 있어도 학생들을 안갯속에 밀어 넣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고교선택제-자율고] 중3 현행대로 고교선택… 내년 상반기엔 개선 자율고 내신제한 불필요하지만 강제는 안해
―서울에서 지난해 처음 실시한 고교선택제에는 변화가 생기나.
“취임 초부터 급격한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중3인 학생들은 작년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현재 중2 학생들의 경우에는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 학생들이 최대한 예측 가능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시행한 결과를 면밀히 검토하고 설문조사도 벌여서 부작용이 얼마나 나타났는지, 부작용을 극복하는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지 연구하겠다.”
―지난해 처음 모집을 실시한 자율형사립고의 학생 선발과 운영 방식은 어떻게 되나.
“일관되게 말했듯이 추가 지정은 없을 것이다. 기존에 지정된 학교는 선발 문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지원 요건에서 내신 성적 제한을 상위 50∼100%로 하도록 했는데 모든 자율고가 상위 50%를 선택하지 않았는가. 설립 목적에 맞는 학교를 만든다는 자율고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모두 성적 50% 이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율고들과 이 부분에 대한 개방적인 협의를 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강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외고 등 특목고 입시와 운영 방식에도 변화를 줄 계획인가.
“외고 입시 기준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외고는 전 과목이 아니라 외국어를 잘해야 한다. 입시 기준 변경이 사교육 증가세도 주춤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그런데 외고의 실제 운영 실태를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과도하게 입시학원화되어 있다. 강제로 실시하는 야간자율학습을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입시경쟁에 매몰된 듯한 외고에는 약간의 변화를 줘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혁신학교-수월성 교육] 혁신학교 내년부터 낙후지역 중학교 우선 지정 국영수 수월성엔 반대… 모두의 재능 키워줘야
―핵심 공약인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혁신학교는 ‘창의성’ ‘인성’ ‘적성·진로’ 교육을 전면화한 학교다. 교과 수업에서는 창의성을 강조하고, 생활지도에서는 인권 존중을, 적성·진로 교육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것이 특징이다. 혁신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의 혁신 의지다. 그렇기 때문에 신청을 받아서 낙후 지역부터 지정할 것이다. 낙후 지역일수록 풍요로운 지역보다 학교가 더 좋아야 한다. 입학 조건은 따로 없다. 그 지역에 사는 누구라도 갈 수 있는 문턱 없는 학교다. 혁신학교엔 1년에 2억 원씩 지원할 것이다. 취임 후 6개월은 여러 가지 준비작업을 하고 내년부터 본격 지정할 계획이다. 불씨-곽 당선자는 교사의 혁신 의지를 ‘불씨’라고 표현했다-를 갖고 있는 교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이분들이 팀으로 모여야 한다.”
―혁신학교 300개를 지정한다고 했는데 초중고교 모두 해당되나.
“중학교에 주력할 계획이다.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의 중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들어서 중학생의 왕성한 호기심과 활동력을 비생산적인 데로 흐르지 않게 해야 한다. 고등학교는 입시제도에 종속돼 있어 헤어 나오기가 확실히 어려워 대안학교 같은 형태가 될 것이다.”
―부모의 바람은 자녀가 좀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그런 바람을 혁신학교가 충족시켜 줄 수 있나.
“공부가 ‘주특기’인 아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의 적성과 수월성도 살려줘야 한다. 혁신학교가 만약 이 아이들의 수월성을 살리지 못한다면 실패한 것이다. 가고 싶은 학교일 뿐만 아니라 학력도 신장시키는 학교여야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혁신중학교 아이들이 다른 학생에 비해 성적이 열세라면 혁신학교가 지역차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수월성 교육 욕구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
“오로지 국영수 문제풀이, 정답 찾기만 강조하는 수월성 교육에만 반대하는 것이다. 수월성 교육은 필요하다. 다만 모두를 위한 수월성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재능을 갖고 있는데 재능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모든 재능이 최고로 발현될 기회를 가져야 한다. 굼벵이가 구르는 재주가 있다면 그 재주를 키워주는 수월성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공부가 재능인 아이들을 위한 시스템도 물론 필요하다. 몇 개 학교를 합쳐 학교군(群)으로 만들고 여기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모아 심화반을 만들 수 있다. 교과교실제를 도입해서 대학처럼 수업하고 속성반도 인정해야 한다. 나중에는 학년제 개념도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기회의 균등이 전제돼야 한다.” [무상급식-교육비리 척결] 재정자립도 낮은 지역서도 무상급식… 의지 문제 당선직후 선물 쇄도… 주인 누군지 찾아 인사조치
―정부가 추진하는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의 교원평가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일단 1학기는 손 안 대고 그대로 간다. 지금 평가는 한 학기 2번 공개수업하고 동료교사와 학부모가 참관한 뒤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보여주기 수업인데 준비 안 하는 교사가 어디 있겠는가. 교실에서 교사 지도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은 학생들이다. 지속적 관찰자이기 때문에 학생이 가장 정확하다. ‘이번 학기에 제일 좋았던 것, 나빴던 것’ 등을 서술형으로 쓰게 한다면 학생에게는 의견 개진의 수단이 되고 교사에게는 자극과 성찰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중학생 이상이라면 가능하다.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변별력이 없다.”
―무상급식 시행에는 서울시 재정 지원이 필수적인데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재정자립도가 하위권인 전남에서도 무상급식을 하는데 서울시는 재정자립도 1위다. 예산의 문제가 아닌 의지의 문제다. 돈줄을 쥐고 있는 것은 시의회인데 시의원이나 구청장 다수가 친환경 무상급식에 긍정적이다. 시의회나 구청장, 시민들이 여러 형태로 기대를 분출할 것이다. 나도 오세훈 서울시장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다. 오 시장이 합리적인 분이기 때문에 접점을 의외로 쉽게 찾을 것으로 본다.”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혐의로 기소된 교사 징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전체적으로 배제징계(파면·해임)는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봐야만 모두 경징계 대상인지 정직 대상도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인사비리에 연루돼서 교장들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로 파면·해임됐는데 정황에 따라 배제징계 안 할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구체적 상황을 보지 않고 도매금으로 넘기는 것은 인민재판이다.”
―학업성취도평가 시행에서 정부와 충돌이 예상되는데, 시험을 안 보고 체험학습에 참여하는 교사들도 있다.
“물론 그 교사들은 원칙을 깬 것이다. 학생·학부모는 시험을 꼭 봐야 할 의무도 없고 중간·기말고사와 달리 불이익도 없다. 그러나 교사는 시험을 안 보겠다고 선동하거나 그럴 수 없다. 교사들은 (시험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하지만 교사를 어느 정도 처벌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여러 가지 정황 논거들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교육비리 척결을 위해 마련한 대책은 무엇인가.
“당선 다음 날 교육청 인사 여섯 명이 샴페인, 갈비, 화분 같은 걸 들고 왔다고 하더라. 대변인이 ‘(선물을) 두고 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 있느냐’라고 말했더니 갖고 온 걸 허겁지겁 들고 돌아갔다고 한다. 9월 인사까지 두 달 동안 그런 사람들이 누군지 찾아내 인사조치할 것이다. 또 인사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도 시민과 학부모가 참여하는 감사제도를 도입할 것이다.”
―취임준비위원회에 참여한 단체들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취임준비위에 참여한 위원들이 어느 단체의 대표이거나 중요 직책을 갖고 있을 수 있지만 단체의 추천이나 요구를 받은 게 아니다. 내가 직접 개개인의 역량과 전문성을 본 것이다. 처음부터 소속 단체의 위임 기능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관료주의 폐해를 극복하려면 시민의 목소리를 수용해야 한다.”
정리=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이현두 교육팀장 ruchi@donga.com
▶인터뷰 전문은 동아일보 교육팀 블로그 (www.journalogplus.net/education)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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