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20만 원만 내시고 우리 선교회에 들어오시면 25명이 가입할 때마다 130만 원씩 드릴게요.”
지난해 6월 서울 관악구 낙성대역 근처 이웃사랑봉사선교회를 찾은 이모 씨(74·여)는 자상한 목사의 설명에 마음이 움직였다. 자식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이 씨에게 130만 원은 큰돈이었다. 목사는 “나중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한 뒤 노인마을을 지어 함께 지내자”고 말했다. 이 씨는 꼬깃꼬깃 뭉쳐둔 20만 원을 꺼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선교회에 가입하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한 달 뒤 목사는 종적을 감췄다.
이 씨는 피해를 본 다른 할머니와 함께 올해 초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그러나 경찰은 “피해액이 40만 원밖에 안 되고 사기 의도를 밝히기 어렵다”며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에 배치된 최지수 사법연수생 검찰 시보(試補·26·여·사법시험 50회)에게 맡겨졌다. 최 시보는 고소장을 토대로 피해를 본 할아버지, 할머니가 수백 명이며 피해액도 1억 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바로 피해자들을 불러 사실을 확인하는 한편 선교회의 회계장부를 들여다보는 등 본격 수사에 나섰다.
목사 서모 씨(56)의 혐의가 하나둘 드러났다. 28일 검찰에 따르면 서 씨는 지난해 4∼7월 서울 강남역과 낙성대역 근처에 선교회를 열어 60, 70대 노인 767명에게 20만 원씩 받아 가로챘다. 이렇게 챙긴 돈은 모두 1억5300여만 원. 그는 다단계 판매를 하던 지인과 함께 선교회를 설립한 뒤 직원들에게도 다단계 회사에 직접 들어가 판매수법을 배워 오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몸이 불편한 노인에게 안수치료를 해준다고 속여 불교 천주교 통일교 등 종교가 다른 사람들까지 선교회에 가입시켰다. 피해 노인들은 상당수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이거나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강남구 개포동)에 살고 있었다.
검찰 실무 수습을 나온 시보의 꼼꼼한 수사로 서 씨는 결국 사기 혐의로 최근 불구속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됐다.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 서 씨가 피해자들에게 돈을 돌려주며 합의를 시도하고 나서자 노인들은 “법이 이렇게 고마운 것인지 몰랐다”며 손녀뻘 되는 최 시보에게 전화를 걸어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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