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큰 손’ 정선화씨 홀로 시작
회원 164명-식당 10곳 동참
홀몸노인 20가구에 음식 전달… 토박 이-입주자 화합에 한몫
주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다. 밥보다 반찬 만드는 게 정말 힘들다는 것을. 특히 한국 음식은 손이 많이 가는 편이라 요리하는 데 상당한 집중력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먹을 반찬도 만들기 영 귀찮을 텐데 정선화 씨(52·여)는 벌써 6년째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 반찬을 만들어 오고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큰손’이다.
○ 홀로 시작해 이제는 164명과 함께
정 씨는 매주 수요일 오전 9시면 상암동주민센터로 ‘출근’한다. 출근 전 사비를 들여 사온 재료를 직원용 식당에 풀어놓는다. 가지나물과 감자조림, 제육볶음, 김치꽁치조림 등 가짓수가 많지는 않더라도 조미료를 쓰지 않는 정성 어린 반찬들을 뚝딱 만들어 낸다.
정 씨는 2004년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혼자 살다 7년 전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조금씩 반찬을 만들었어요. 제대로 효도 한번 해드리기도 전에 훌쩍 가셨거든요. 주변에 혼자 사시는 노인 분들께 조금씩 전달하다 보니 어느덧 20가구로 늘었네요.” 정 씨는 조금 더 푸짐한 식사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는 욕심에 동네 음식점과 주민들을 섭외했다. 정기적으로 국과 김치, 반찬, 식기 등을 후원해 주는 식당만 벌써 10곳이 됐다. “무작정 찾아가 도와주세요라고 말했어요. 큰 부담 없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라서 그런지 선뜻 도와주시더라고요.” 정 씨와 뜻을 함께하는 주부는 164명으로 늘었다. 봉사를 하고 싶어도 마땅한 기회가 없어 못하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힘을 보탰다. 인력을 보강한 상암동 ‘아줌마 부대’는 요즘 반찬뿐만 아니라 목욕 봉사와 영정 사진 촬영, 이·미용 봉사도 함께한다.
21일 주민센터에서 만난 정 씨는 함께 봉사하는 주부들과 함께 초록색 앞치마를 입은 채 비빔밥을 만들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했다는 무채와 고사리, 콩나물, 호박나물을 김이 나는 흰 쌀밥 위에 정성스레 올렸다. 이날은 특별히 공공근로와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날이었다. 박사윤 씨(69)는 “꼭 며느리가 만들어준 것 같아 맛있게 잘 먹었다”고 했다.
○ 봉사로 지역 화합까지
상암동을 휘젓고 다니는 정 씨지만 사실 그도 지역 토박이는 아니다. 2004년 재건축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했다. 상암동은 재건축된 고층 아파트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 혼재된 대표적 동네. 그러다 보니 기존 원주민과 아파트 입주자 사이에 어색하고 미묘한 감정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명성 상암동주민센터장은 “소득이나 출신 지역 차가 큰 탓에 생기는 각박한 동네 분위기를 정 씨와 봉사단체가 해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봉사단체 소속 164명도 마치 작은 ‘상암동’ 같다. 정 씨처럼 아파트에 뒤늦게 입주한 사람들과 평생을 상암동에서 보낸 토박이들이 뒤섞여 ‘봉사’라는 공통 목적을 갖고 일에 매진한다.
상암동 ‘큰손’ 아줌마들은 이달 1일 드디어 ‘큰일’을 벌였다. ‘상암DMC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시 비영리 민간단체에 등록한 것. 주민들이 주가 돼 만든 봉사단체가 시에서 인증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로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영리단체가 되면 공공기관 등에서 공모하는 일자리 창출 사업에 참여할 수 있고 후원도 받을 수 있다. 서울시 측은 “상암DMC봉사단 사례가 앞으로 개인들이 만든 작은 봉사단체들을 활성화하는 데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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