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로 ‘의약분업’이 시작된 지 꼭 10년째를 맞았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를 모토로 시작한 의약분업은 최대 목표였던 약품 오남용 방지에선 성과를 거뒀지만 약제비의 증가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달 9일 보건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장의 요청에 따라 의약분업에 대한 전면적 재평가를 실시키로 했다.
의약분업을 실시한 후 약품 오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항생제 사용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감기약에 넣는 항생제 처방률은 2002년 72.6%에서 지난해 49.7%로 떨어졌다. 또 전체 항생제 처방률도 2002년 41.7%에서 지난해 27.4%로 줄었다.
의약분업 도입 이후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약제비가 예상외로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는 의약분업 도입 당시 약제비가 크게 줄어 건강보험 재정이 튼튼해진다며 분업을 서둘렀다. 하지만 약제비는 실시 이후 크게 증가했다.
당초 복지부는 항생제 주사제 등 약품 오남용을 막고 과잉처방을 줄이면 약제비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예상대로 과잉처방은 줄어들었다. 2002년 처방 건수당 약품 품목수가 4.18개에서 2009년에는 3.96개로 소폭 감소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만성질환자와 고령 환자가 증가하면서 약제비는 급증했다.
또 의약분업 실시 전엔 없었던 약국의 조제비도 증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2000∼2009년 자료에 따르면 시행 첫해인 2000년에만 약사에게 준 조제료가 3896억 원에 이르렀다. 이 조제료는 지난해 2조6051억 원으로 높아졌다.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자가 더 늘어나면 약 사용과 조제 모두 증가하게 된다.
대부분의 의료 전문가들은 의약분업이 어느 정도 정착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약분업에 대해 특히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달 전국 의사 8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강제분업이 아닌 선택분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54.4%(490명)로 절반을 넘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의사가 약을 줄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인 19.7%(177명)까지 합치면 74.1%가 현재의 강제의약분업에 불만을 나타냈다. ‘의약분업제도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답한 의사도 13.4%(121명)였다.
의사들은 의약분업을 전면 재평가해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문조사 결과 ‘평가를 통해 제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56.1%(505명), ‘제도의 틀은 바꾸지 않더라도 문제점을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35.8%(322명)였다.
의약분업이 실시되자 병원에서 치료만 받고 약국에서 약을 사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많은 의료 소비자들이 불만을 토로했었다. 그러나 10년간 제도가 정착되면서 이런 불만은 많이 줄어들었다. 다만 아직도 가능하다면 병원에서 약을 받고 싶다는 환자도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8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1001명 중 ‘의료기관에서 받고 싶다’는 사람은 876명(87.5%), ‘약국에서 받고 싶다’는 사람은 125명(12.5%)이었다.
동네병원은 외래환자 중심으로 살리고 대형병원은 입원-중증환자 전담 ‘대수술’ 의료체계, 의원-종합병원 분리 중간급은 전문병원 전환 추진
환자들 진료비 부담 줄지만 의원
불신땐 환자 쏠림 못막아 “이대로는 20년을 못 버틴다.”
건강보험 재정위기, 의료서비스 오남용 등 위기에 처한 국내 의료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 주도하에 의료계, 시민단체,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된 ‘1차 의료 활성화 추진 협의회’가 30일 첫 모임을 가졌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 총론에는 합의했으며 각론별로 구체적인 대안을 협의했다”고 말했다. 협의회의 목표는 명확하다. 바로 ‘지속가능한 의료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협의회 관계자는 “지난 수십 년간 의료시스템 개혁 논의가 적지 않았지만 장관이 바뀌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이미 수차례 비공식 회동을 가졌고, 모두의 공감대가 확고하기 때문에 꼭 성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입수한 초안에 따르면 동네 의원을 살리고, 장기적으로 의원은 외래 환자, 대형병원은 입원·중증 환자 중심으로 운영하는 게 핵심이다. 복지부는 최종안을 9월 말까지 만들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할 계획이다.
○ “동네의원 살려야 지속가능한 의료”
2000년 7월 1일 직장과 지역가입자 간 건강보험이 통합되고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몰렸다. 환자의 선택권은 넓어졌지만 대형병원 쏠림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동네 의원은 생존을 위해 ‘환자의 1차 모니터링’이란 본래의 역할 대신 비타민제를 팔거나 비급여 진료에 전념하고 있다. 그 결과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되고 있고, 현재의 의료시스템은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동네의원을 살리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동네의원이 제구실을 해야 의료 시스템이 바로 산다는 것. 각종 지원책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동네의원을 위한 보험 수가 항목을 신설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환자를 처음 진료할 때 ‘기초상담료’를 의원에 지급하거나 ‘생활관리 지도료’ 또는 ‘의약품 선택 지도료’ 등을 얹어주는 제도가 추진되고 있다. 초·재진 진찰료 산정 기준도 개선할 방침이다. 현재는 첫 진료 후 90일이 지나야 치료가 종결되지만 앞으로는 ‘환자가 내원했거나 투약을 종료한 날로부터 30일까지’로 바꾸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의원들은 30일이 지나면 다시 초진료를 받을 수 있다. ○ 의료시스템 확 뜯어고친다
협의회 참석자들은 “현 의료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동의하며 지속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모색하고 있다. 의료기관의 구분을 현재의 ‘규모’ 중심에서 의료서비스 본연의 ‘기능’ 중심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 2, 3차로 구분된 의료전달체계를 크게 의원과 대형 종합병원으로 정리한 뒤 그 중간급 병원들은 전문병원 또는 개방형 병원으로 개편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 경우 의원은 △입원실을 두지 않고 외래환자만 보고 △질병의 예방과 관리를 담당하며 △대부분의 환자가 꼭 거쳐야 하는 관문(gatekeeper)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대형병원은 중증 진료 및 연구 교육 기능을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중급 병원의 환자 감소에 대비해 중급 병원을 전문병원과 개방병원으로 특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쟁력을 갖춘 중간급 병원들은 전문병원으로 육성하고, 그 밖의 병원은 개방병원으로 전환해 시설과 장비를 1차 의료기관에서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연간 1조 원 가까이 건강보험 재정이 절약될 것으로 추산된다.
○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새로운 의료전달체계가 구축되면 경증 질환으로 대형병원을 이용하기가 어려워진다. 당장은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의료 서비스 오남용을 막을 수 있어 개인의 진료비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동네의원도 세분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복지부는 만성질환자와 고령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단골의사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이 많이 투입되는 이들을 특정 의원에 등록시켜 건강을 관리하게 하는 것. 이 제도가 시행되면 일부 의원은 만성 환자를 타깃으로 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이 제도를 발전시켜 유럽식의 주치의 제도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의원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은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1차 의원 활성화 방안은 무용지물이 될 우려가 높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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