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 낯뜨거운 ‘콩글리시 행정구호’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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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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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Go yang → 양고기 먹으러 가자고?
Hi-Touch Gongju → 인사하며 손뼉치자고?
SingSing 동구 → 헉, 미국의 ‘싱싱감옥’?

부산 동구의 대표 슬로건인 ‘SingSing 동구’.

미래로 ‘씽씽 달린다’와 ‘싱싱하다’는 의미의 중의적 표현에서 나온 구호다. 기자가 내민 설문지에서 이 구호를 본 미국인 메릴린 플럼리 교수(한국외국어대 영어과)는 ‘헉’ 소리를 냈다. “‘싱싱’은 싱싱 감옥(singsing prison)을 연상시키는데요.” 미국 뉴욕 허드슨 강변에 있는 싱싱 교도소는 흉악범 집중 수용소로 악명이 높다.

플럼리 교수 옆에 있던 캐나다인 스티븐 애도런티 교수(한국외국어대 영어과)는 경북 상주의 구호 ‘Just+ 상주’를 가리키며 “‘뭐 그냥 상주. 올 필요 없어요.’ 이런 느낌인데요”라고 말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246개 중 44%인 108곳이 영어 구호를 쓴다. 이에 대해 한국외국어대 외국인 교수와 유학생 20명을 대상으로 물어봤다.

경기 고양시 구호인 ‘Let's Go yang’에 대해선 “양고기 먹으러 가자”라는 반응이 많았다. 충남 서천군의 ‘Amenity Seocheon’에 대해선 “어메니티(amenity)가 무슨 뜻이냐”, 충남 공주시의 ‘Hi-Touch Gongju’를 보고서는 “안녕 인사하면서 손뼉 치는 거?”라는 반응이 나왔다.

애도런티 교수는 “공주는 백제 왕조의 수도였는데 왜 ‘높이 뛰는 운동’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했지요? ‘Royal 공주’라고 하면 어떨까요. 외국인들은 역사에 열광합니다”라고 말했다.

뜻이 통하지 않는 조어도 많다. ‘Greenpia’(서울 도봉구), ‘Dreampia’(대구 남구) 등 단어에 유토피아(Utopia)의 ‘pia’만 붙인 사례가 대표적. 플럼리 교수는 “‘피아(pia)’는 뜻 자체가 없는 말이라 그린피아라고 하면 우스꽝스럽게 들린다”고 말했다. 울산(Ulsan for you)과 경남 김해(Gimhae for you)처럼 같은 구호를 쓰는 곳도 많다. ‘Yes’ ‘Happy’ ‘Pride’ 등의 표현은 10여 개 지자체에서 함께 쓴다.

지자체 영어 구호의 상당수는 외국인도 모르고 한국인도 몰랐다. ‘Super 평택’을 구호로 쓰고 있는 평택시는 구호를 응용해 ‘슈퍼오닝(SuperOning)’이란 지역 농산물 상표도 만들었다. ‘Super(슈퍼)’+‘Origin(오리진)’+Morning(모닝)’의 합성어란 게 평택시의 설명.

파주시는 시 구호를 지난 5년간 매년 바꿨다. ‘Upgrade PAJU’, ‘Back-to-Basics PAJU’, ‘YES, WE CAN!’에 이어 올해 구호는 ‘New More G&G PAJU’. 구호가 바뀔 때마다 홍보물도 새로 만들었다. 현수막과 플래카드 제작 의뢰를 받은 광고기획사 관계자는 “올해 제작비가 1800만 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게 구호에 들어간 ‘G&G’의 뜻을 묻자 “생각을 안 해봤다”고 했다. 확인 결과 ‘G&G’는 ‘Good & Great’였다. 이마저 정부시책으로 녹색성장이 강조되면서 ‘Green & Global’로 또 바뀌었다. 파주시 관계자는 “시민들이 뜻을 모르면 궁금해서라도 더 찾아보게 되지 않을까요?”라는 기가 막힌 ‘해몽’을 내놓았다.

‘콩글리시 행정’은 지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Walking School Bus(워킹 스쿨버스)’ 제도를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이 어른들의 인솔하에 걸어서 등하교하는 제도다. 학부모 민원기 씨는 “미국과 남미에서 17년간 살았지만 교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어떤 제도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공문에 쓸 때는 ‘Walking School Bus’와 함께 ‘보행안전도우미사업’을 병기하지만 현장에선 한글 이름이 더 어렵다며 영어를 쓴다”고 해명했다. 보건복지부의 ‘Tour Talker’(현지 노인이 관광객을 안내하는 제도), 교육과학기술부의 ‘Wee project’(학생안전통합시스템)도 이해가 어려운 정책명이다.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김일태 교수는 “정부가 시민에게 다가서는 행정을 하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발상을 하고 있다”며 “기업이야 상품명을 잘못 지으면 기업 자신의 손해지만 공공기관이 이름을 잘못 쓰면 시민들이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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