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 여름방학 계획표 뒷장, 엄마 아빠는 모르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6일 03시 00분


“매일 수학문제 20개 풀기, 언어영역 지문 3개 풀기, 영어 단어 30개 외우기….”

고등학생 아들을 둔 부모라면 아들의 여름방학 계획이 대부분 공부와 관련된 이런 내용이리라 기대한다. 과연 현실도 그럴까? 특히 혈기왕성한 남자 고교생들은 태양이 작열하고 바다가 나를 부르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부모에겐 공개하지 않는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일단, 아들이 부모 말을 잘 따르며 난데없이 착해진다면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아들에겐 꿍꿍이가 있을 공산이 크다.

서울 강서구의 한 고등학교 2학년 이모 군(16). 그는 여름방학 때 친구 8명과 함께 1박 2일로 인천에 있는 을왕리해수욕장에 다녀올 계획이다. 특히 이번 여행에는 중학교 때 브라질로 유학을 갔다가 잠시 귀국한 절친(절친한 친구)이 동행할 예정. 하지만 부모님이 허락해주실 리 만무하다. 이 군은 1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먼저 여름방학 때 외박을 허락 받기 위해 ‘신용등급’을 높이기로 했다. 하위권이던 이 군은 하루 2시간씩 공부시간을 늘린 결과 이번 기말고사에서 중상위권으로 뛰어올랐다. 특히 독서실 대신 집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부모님께 집중적으로 보여드림으로써 신뢰도를 높였다. 다가오는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영양제와 함께 정성을 담은 편지도 준비했다. 이 군이 아버지의 생일을 미리 알고 챙기는 것은 난생 처음이다.

“생일에 아버지가 기분이 좋으실 때 ‘브라질에서 온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고 와도 되는지’ 여쭙고 허락을 받을 계획이에요.”

의심 많은 누나의 눈초리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누나 방에 하루가 멀다 하고 초콜릿이나 머핀을 갖다놓는 수고도 잊지 않는다.

생전 독서실엔 취미가 없던 아들이 ‘이번 여름방학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독서실에 가겠다’고 선언해도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독서실을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엉뚱한 곳으로 ‘새는’ 남고생도 적잖기 때문이다.

경남 진주시의 한 고등학교 1학년 최모 군(16)은 여름방학에 부모 몰래 오후 2∼8시 음식점에서 시급 4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루 2만4000원씩 방학 동안 모아서 친구가 찬 유명브랜드 손목시계를 구입하려고 한다.

“아르바이트 중 혹시 부모님이 제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와 독서실에 있는지 확인하려 할 때를 대비한 전략도 세웠어요. 일단 받지 않았다가 5분 뒤 조용한 곳으로 가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공부에 집중하느라 전화 온 줄 몰랐다’ ‘잠이 와서 잠시 나가 운동하느라 전화를 못 받았다’ ‘친구와 간식을 사 먹고 왔는데 전화를 가방 속에 두고 가서 못 받았다’고 둘러대는 것이죠.”(최 군)

최 군은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식점에 붙어있으면 들통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월, 수, 금요일엔 일을 하고 화, 목요일엔 독서실에 갈 계획이다.

부모 몰래 외모 변신을 꿈꾸는 남고생들도 있다. 고3 김모 군(18·경기 성남시)은 여름방학 때 부모 몰래 염색과 문신을 할 생각이다. 김 군이 선택한 염색약 색깔은 블루블랙. 실내에서 보면 검은색으로 보이지만 실외에 나가면 푸른빛이 매력적으로 감돌기 때문에 여간해선 부모에게 들킬 가능성이 낮다. 또 블루블랙은 색이 잘 빠져서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엔 염색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장점도 있다.

김 군은 2주간 지속되는 한시적 문신인 ‘헤나’를 이번 여름방학에 시도할 계획이다. 첫 2주는 잉어 모양을 팔뚝에, 다음 2주는 나팔 모양을 목 가장자리에 새길 생각이다. 김 군은 팔뚝을 가리기 위해 ‘팔 토시’를 미리 구입했다. “이거 착용하고 자세를 가다듬어 ‘열공’(‘열심히 공부한다’는 뜻의 신조어)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겠다”고 김 군은 말했다.

정석교 기자 stay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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