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위기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면서 보장성 강화를 위한 보험료 인상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가입자와 사용자, 정부가 함께 건강보험료 부담을 늘려 공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자는 취지입니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와 보장성 제고는 중요하지만 보험료 인상에 앞서 재정 지출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제도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국민 건강의 보루인 건강보험의 건강성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요.》
▼34% 더 내면 보장성 높여 실리▼
[찬]건보재정 살려야 민간醫保증가따른 과잉진료 줄어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17일 공식 출범한다. 가입자의 건강보험료, 사용자 부담 보험료, 정부의 국고지원 등 3자 모두에서 건강보험료를 지금보다 34% 더 부담하자는 운동이다. 이렇게 하면 2010년 기준으로 36조2000억 원인 건강보험 재정이 48조6000억 원으로 늘어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첫째, 상급병실, 고가의 진단 및 치료, 선택진료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던 비급여 항목을 건강보험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둘째, 입원 중심 병원진료비의 보장성 수준을 90% 이상으로 확대할 수 있다. 셋째, 개인별 연간 총진료비가 100만 원을 넘지 않도록 본인부담금 100만 원 상한제를 실시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서민과 중산층 가계의 의료비 불안이 사라지고 실손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없어진다.
현재 건강보험료율은 소득의 5.33%인데 일본의 8.2%나 유럽 선진국의 12%에 비해 매우 낮다. 그래서 지금보다 34% 인상(국민 1인당 평균 1만1000원)된 건강보험료를 내자는 취지이다. 직장가입자가 건강보험료 1만1000원을 더 내면 사용자도 1만1000원을 더 내야 하고 이 둘을 합한 금액인 2만2000원의 20%인 4400원을 정부가 국고지원을 통해 더 내야 한다.
직장근로자는 1만1000원을 더 내지만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2만6400원이나 늘어난다. 사용자 부담 보험료가 없는 지역가입자가 40%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국민은 추가적으로 납부한 건강보험료의 1.9배를 건강보험 급여로 돌려받는다. 민간의료보험의 0.8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치다.
유럽 선진국은 전년 대비 국민의료비 증가율이 2∼3%로 경제성장률과 엇비슷한 수준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전년 대비 10∼13%씩 국민의료비가 폭증한다. 의료비 지출이 급증하는 데는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나 국민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욕구의 증대 같은 구조적 요인이 있으나 이것 못지않게 행위별수가제와 실손 민간의료보험의 확산이 중요한 이유이다. 수익 추구 경향이 강한 민간의료기관 중심의 의료공급구조에서 행위별수가제는 불에 기름을 끼얹듯 과잉진료를 유발한다. 대형병원 환자의 대다수는 실손 민간의료보험을 갖고 있는데 여기서 규제되지 않는 과잉진료가 일어난다. 전형적인 시장 실패다.
급등하는 국민의료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의료비 불안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행위별수가제를 조속히 포괄적 보수지불제도로 개편하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대대적 확충을 통해 의료재정의 공공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이는 이미 세계사적 경험을 통해 도출된 해법이다. 여기서 국민의 풀뿌리 참여에 의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운동이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추가된 부담 직장인에 떠넘겨▼
[반]보장성 강화도 좋지만 재정지출부터 개혁해야
건강보험의 안정성과 보장성을 높이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보장성 제고를 뒷받침할 재정 부담의 공평성과 보장성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전제가 요구된다. 우리는 건강보험 통합 직후인 2001년에 심각한 재정위기를 경험해 재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당국의 발표에 다르면 재정절감에 최선을 다해도 올해에 1조3000억 원 정도의 재정 적자가 예상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보장성을 90%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보험료를 현재보다 35∼40% 대폭 인상하자고 주장한다. 과거 실시된 여러 가지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은 보험료 인상을 상당히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고자 한다면 국민의 조세저항이라는 현실적인 난관에 봉착한다. 현실적인 난관을 제쳐 놓고도 보험료의 대폭 인상을 통한 보장성 제고가 바람직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이 어려운 현실에서 보험료의 대폭 인상은 자칫 소득 파악이 가능한 직장 근로자의 부담 가중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기업의 부담 증가로 이어져 경제에 주름살을 주고 고용 증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둘째, 보장성 90%가 바람직한 목표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선진국의 보장성은 80%를 상회하지만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제반 사정이 허용할 수 있었던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당시 선진국은 높은 경제 성장, 적정한 인구 증가, 의료기술의 낮은 발전 속도를 유지했으므로 높은 보장성이 가능했다.
현재는 선진국도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인구고령화로 복지국가를 포기하는 상황이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에 이르는 우리나라가 과연 선진국이 포기한 복지국가론을 추종하여 보장성 90%를 고집하는 일이 바람직한 목표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한번 주어진 복지수준을 후퇴시킬 수 없는 선진국의 고민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셋째, 건강보험 통합 이후 보험재정의 증가 추세를 보면 보장성 강화를 전제로 추계한 재정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보험재정이 증가했다. 즉 보장성을 강화한 비율만큼 보험재정 지출이 증가하지 않고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보험재정 위기를 걱정하도록 만들었다. 높은 보장성을 유지하려면 현재보다 더욱 높은 비율로 매년 보험료 인상을 하지 않고는 보장성은 다시 하락하기 때문이다.
획기적인 건보재정 안정화를 위한 보험료 인상과 보장성 제고에 앞서 건강보험 재정 지출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제도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사회보험 선진국의 개혁 사례를 보면 건강보험 재정은 단일화하면서 재정의 사용을 분권화하여 경쟁을 통한 재정절감을 도모하고 있다. 2006년 네덜란드 의료개혁을 필두로 최근에는 독일도 이 방법으로 의료비를 절감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개혁이 전제되지 않는 보장성과 건보재정 안정화는 단발성으로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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