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법원, 여중생 살해 연루 19세 영장 싸고 20여일 신경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16일 03시 00분


5번 청구 5번 퇴짜… 檢-法 ‘오기싸움’?

검찰의 5번 청구
영장청구 거듭 기각되자
“본보기 위해서도 꼭 구속”
수뇌부는 ‘대결 모양새’ 우려

법원의 기각-각하
“도주우려 없는데 재청구”
‘영장항고제’ 노림수 의심
5번째 ‘각하’ 강한 표현 사용


‘5번 구속영장 청구에 5번 모두 기각 또는 각하.’ 사법사상 보기 드문 구속영장 청구-기각-재청구-기각이 반복되는 일이 벌어졌다. 문제가 된 사안은 지난달 10대 청소년 6명이 10대 소녀를 폭행한 끝에 숨지게 하고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버린 엽기살해사건. 공범 6명 중 4명은 구속영장이 발부됐지만, 나머지 2명은 영장이 기각됐다. 이 가운데 1명인 이모 군(19)의 신병 처리 문제를 놓고 법원과 검찰이 20여 일간 ‘오기(傲氣) 싸움’을 벌였다. 14일 다섯 번째 영장이 ‘각하’되고, 검찰은 이 군을 불구속기소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사태는 매듭지어졌다.

○ 5번 청구에 5번 기각-각하

서울서부지검은 이 사건의 공범인 10대 청소년 6명에 대해 지난달 18∼20일 차례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중학생 김모 양(15)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폭행한 최모 양(15)과 최 양의 집에 묵으며 폭행에 가담한 안모(15), 윤모 양(15), 최 양의 남자친구 정모 군(15) 등 4명에 대해서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반면 최 양의 집에 한 번 들러 폭행을 거들고 살인을 묵인한 김 양의 남자친구 이모 군(15)과 사체유기 등에 가담한 안 양의 남자친구 이 군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검찰은 안 양의 남자친구인 이 군을 주범 중 한 명으로 보고 있다. 살인에까지 이른 폭행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10대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반쯤 죽여놔’라고 부추겼고, 김 양이 숨지자 최 양 집으로 가 ‘케이블TV 탐정만화에서 본 대로’ 시신을 훼손하고 수심이 깊은 양화대교에서 시신을 버리도록 하는 등 범행을 주도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지난달 19일 이 군에 대해 사체유기 혐의로 처음 영장을 청구한 데 이어 22일과 29일, 이달 5일 다시 같은 혐의로 영장을 재청구했다. 법원은 그때마다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원론적인 이유로 기각했다.

7일까지 4차례 연속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은 12일에는 문자메시지 등을 근거로 공동상해 혐의를 추가해 다섯 번째로 영장을 청구했다. 오광수 서울서부지검 차장은 “청소년들의 잔혹한 강력범죄를 엄단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구속할 것”이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이를 심리한 서울서부지법의 수석재판부(부장판사 이병로)는 14일 ‘기각’도 아닌 ‘각하’라는 표현을 쓰며 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 각하 사유로는 “네 차례의 (기각)결정과 판단을 달리하기 어렵다”는 것. 구속 사유를 더 따져볼 필요도 없이 이전의 내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영장을 계속 가져와봐야 받아주지 않겠다는 경고의 뜻이 담긴 것이었다.

법원과 검찰의 시각차에는 이 군을 주범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판단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명백한 주범이라고 보는 반면 법원은 이 군이 직접 폭행에 가담하지는 않은 점에 주목한 듯하다.

○ 영장항고제 도입 둘러싼 오기 싸움?

법원은 검찰이 이례적으로 영장을 5차례나 청구한 것이 향후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에서 영장항고제(구속영장 발부·기각 결정에 대해 상급법원의 판단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도입의 근거로 삼으려는 포석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죄질이 좋지 않은 이 군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거듭 기각한 데 대해 여론이 좋지 않은 점을 활용해 영장심사에 있어서도 일반 형사재판처럼 항소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영장 재청구를 계속했다는 것이다. 일선 법관들 사이에서는 “검찰이 오기를 부리듯 5차례나 영장을 청구한 것은 법원의 판단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조차 잃은 처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일선 검사들 역시 법원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검사들 사이에서는 “이 군이 비록 미성년자이고 직접 폭행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끔찍한 방법으로 사체 훼손과 유기를 한 만큼 영장 기각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일부 검사는 “반복적인 영장 재청구보다 ‘무오류의 함정’에 빠져 최초에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지 않으려는 법원의 독선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검찰 수뇌부는 공식 대응은 피하는 분위기다. 구속영장 청구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서울서부지검이 5차례나 계속 영장을 재청구해 법원과 갈등을 빚은 것은 김준규 검찰총장이 취임 이후 강조해온 ‘신사다운 수사’의 기조에 걸맞지 않은 대응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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