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회 시간에 댐을 배우면서 선생님이 연천 사고 이야기를 했어. 그때 옆에 있던 어떤 애가 ‘저, 이 사건 알아요. 예전에 다니던 학교에 그런 친구가 있었어요’라고 했어.”
아이의 말에 A 씨(37·여)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2009년 9월 6일 ‘임진강 참사’로 남편(당시 38세)과 아들(당시 9세)을 한꺼번에 잃은 A 씨는 사고 직후 무작정 집을 옮겼다. 이 사고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말을 할까 봐 두려웠던 것. A 씨는 “아이들이 새로 전학 간 학교의 담임교사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지만 혹시라도 소문이 퍼질까 봐 나도 아이들도 노심초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털어놨다.
사고 후 10개월, 시끄러웠던 보상금 문제도 마무리됐지만 A 씨에게 임진강 사고는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묵직하게 남아있다. 18일 북한 댐 방류 소식은 아픈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인터넷에서 북한 댐 방류 소식을 확인한 A 씨는 ‘심장이 쿵쾅대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임진강’, ‘연천’, ‘아빠’와 같은 말들은 A 씨 가족에게는 금기어다. 그는 “18일 뉴스를 본 아이들이 혹시나 엄마에게 무슨 변화가 있지 않을까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워했다”며 “아이들이 ‘엄마가 잘못되지 않을까’ ‘아빠처럼 떠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몇 달 전에도 A 씨를 힘들게 한 일이 있었다. 다름 아닌 천안함 폭침 사건이었다. A 씨가 보기에 천안함 사건과 임진강 참사는 여러 가지로 겹치는 점이 많았다. “북한, 물, 유가족 등 공교롭게도 우리 가족의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공통점이 적지 않았다”며 “TV에서 유가족들의 눈물, 고통, 기약 없는 기다림을 보여줄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잠시 깊은 숨을 들이켠 A 씨는 “남편과 아들의 빈자리가 너무 커 괴로웠어요. 다시는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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