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파업 1년 “1대라도 더 팔아야 동료 돌아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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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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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일제휴가속 구슬땀 흘리는 평택공장

지난해 8월 6일 파업이 끝난 다음 날 경기 평택시 쌍용차 조립공장에서 직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8월 6일 파업이 끝난 다음 날 경기 평택시 쌍용차 조립공장에서 직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극한 노사 대치 속에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지난해 여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타이어에 불이 붙고 볼트와 너트가 날아다녔다. 극적으로 77일간의 파업이 끝났지만 노사는 서로 깊은 상처를 받았다.

6일은 쌍용차가 파업을 종료한 지 1년이 되는 날. 지금 쌍용차 노사는 파업의 잔해를 딛고 일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노사가 함께 땀을 흘린 덕분에 자동차 판매 대수는 세 배로 늘고, 신차 출시가 임박했으며, 회사 매각절차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무급휴직으로 처리돼 회사를 떠난 직원들은 1년 내내 일용직 노동판 등을 전전하며 월 수십만 원의 소득으로 가정을 꾸리고 있다.

○ 노사문화 크게 달라져

4일 찾아간 쌍용차 경기 평택공장은 모든 사람이 휴가를 떠나 조용한 가운데 5, 6일 특근을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8월 첫째 주는 국내 자동차 5개사와 관련 협력업체들이 일제히 휴가를 즐기는 기간이다. 특근하는 회사는 쌍용차가 유일하다. 요새 잘 팔리는 렉스턴, 카이런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한 대라도 더 만들기 위해서다.

일 년에 한 번뿐인 여름휴가 때 특근을 할 수 있는 것은 노조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쌍용차 노사는 “파업 종료 후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노사 관계”라고 입을 모은다. 노조는 지난해 9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한 데 이어 올 5월 주요 대기업 중 처음으로 ‘타임오프(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에 합의했다. 직원들은 “노조의 달라진 모습은 조합원이 가끔 서운함을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노사 단합은 판매 증가로 이어졌다. 7월 한 달간 판매한 자동차는 총 7369대. 지난해 8월에는 2012대밖에 팔지 못했다. 수출을 제외한 내수판매는 지난해 8월 940대에서 올해 7월 2738대로, 수출은 1072대에서 4631대로 각각 191%, 332% 늘었다. 지금 같은 판매 신장세에다 9월 예정된 신차 ‘C200’ 출시 효과를 더하면 올해 판매목표 8만5000대를 무난히 돌파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회사가 정상화된 덕분에 쌍용차 직원들의 여름도 1년 전과 180도 바뀌었다. 초등생 자녀들과 지리산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서병하 도장1팀 기감은 “지난해엔 회사에 복귀하자마자 모든 것이 난장판이어서 휴가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지난해와 너무 다른 상황을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 무급 휴직자들은 괴로운 1년

그러나 다른 직원들과 달리 무급휴직 상태인 한모 씨(37)의 여름휴가는 일이 없어 쉴 수밖에 없는 ‘원치 않는 휴가’다. 한 씨는 포장이사 일을 한다. 한창 더운 여름에 이사하는 사람이 없어 사무실에서 용역 주문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 씨는 “다른 곳에 취직하고 싶어도 쌍용차에 다녔다는 이력 때문에 취직이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소득은 한 달에 70만∼80만 원 정도다.

윤대산 씨(50)도 1년 내내 일용직 노동판을 찾아다니고 있다. 윤 씨는 지난해 9월 미군부대에서 땅 다지기 공사를 할 때 신호수로 일하며 일당 6만 원을 받았고, 이후 충남 당진으로 내려가 전기배관 일을 했다. 보름 전에는 평택으로 돌아와 일용직으로 도로 보수 공사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자동차만 만지다 온 사람들이니 일용직 일을 할 때도 잘 못하기 마련”이라며 “일 잘 못한다고 혼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는 더 서러웠다”고 한숨을 쉬었다.

462명에 이르는 무급 휴직자의 복직은 불분명한 상황이다. 파업 종료 당시 노사는 무급 휴직자에 대해서는 1년 경과 후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주야 2교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로 했으나 회사에서는 복직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 씨는 “복직을 언제 시키겠다는 말이 없는 게 제일 갑갑하다”며 “복직을 할 수 있는지 그것만이라도 좀 알고 싶다”고 말했다. 윤 씨도 “순환휴직(일종의 일자리 나누기)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급휴직자들은 협상 타결 1주년을 맞는 6일 공장 앞에서 출근투쟁을 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무급휴직 동료를 보는 직원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다. 이상경 조립2팀 공장은 “평택 같은 작은 동네에서는 돌아다니다 보면 예전 동료들과 마주치기도 하고 애들이나 부인들도 서로 잘 알고 지내면서 소식을 듣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겸연쩍다”며 “우리가 열심히 일해야 회사 사정이 좋아지고 복직도 빨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다들 열성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평택=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이샘물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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