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축소 은폐 사실이 드러난 이른바 ‘2차 폭로’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교도소 직원의 신원이 23년 만에 공개됐다. 서울 영등포교도소 황용희 교도관(53)은 10일 출간한 ‘가시울타리의 증언’(멘토프레스)이라는 책에서 “1987년 당시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으로 근무했던 안유 씨(66)가 고문 가담 경관이 2명이 아니라 5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복역 중이던 이부영 전 국회의원에게 알림으로써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 은폐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고 썼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영등포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보안 사안을 1차로 취급하는 위치에 있었던 안 씨는 수감 중이던 두 경찰관과 정권 측의 협상이 결렬되는 과정에서 고문에 관여한 상급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 씨는 “직업윤리 때문에 마음이 몹시 불편하지만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1970년대 서울구치소에서부터 인연을 맺은 이 전 의원에게 극비사항인 고문 경관들의 면회 기록 내용 일부를 귀띔했다. 이 전 의원은 이를 쪽지로 써서 한재동, 전병용 교도관을 통해 당시 재야운동을 하던 친구 김정남 씨(전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에게 전달했다. 함세웅 신부를 통해 이를 건네받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1987년 5월 18일 “고문 가담 경관은 5명이며 박종철 군 사건이 조직적으로 은폐, 조작됐다”고 폭로했다. 이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6월 민주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이 전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안 씨가 진실을 공개하는 데 너무나 큰 부담을 느껴 설득에 애를 먹었다”면서 “‘역사에 옳게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며 안 씨의 마음을 어렵게 돌려 황 교도관의 책에 그의 이름이 공개됐다”고 말했다. 안 씨는 대전교도소장 등을 지낸 뒤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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