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요 나눔예술]망각의 기억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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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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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짙게 드리운 표정 없는 할머니
한오백년 가락 맞춰 팔-다리에 잠든 기억 나비처럼 훨훨 날다

서울시 무용단의 무용수가 지난달 22일 서울여자간호대학 실버케이스 공연에서 진주교방 굿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서울시 무용단의 무용수가 지난달 22일 서울여자간호대학 실버케이스 공연에서 진주교방 굿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우리의 팔과 다리는 잠자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로 가득하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춤사위는 훨훨 나는 나비를 연상시켰다.

젊은 날 춤판을 회상하듯 ‘한오백년’ 가락에 두 팔을 날개 삼아 한발 한발 들어 올리며 무대를 휘저었다. 치매가 드리운 무표정한 얼굴에 멈춰진 기억, 하지만 할머니의 팔과 다리에는 과거 아름다웠던 추억이 담겨 있는 듯했다.

지난달 22일 펼쳐진 서울시무용단의 서울여자간호대학 실버케어스 공연.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를 탄 채 공연을 지켜본 팔순의 김 씨 할머니는 “수천만 원 가치의 공연을 봤다”며 거듭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음악이나 춤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개념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굳이 그런 치료가 아니더라도 ‘함께해요! 나눔예술-Happy Tomorrow’(www.nanumart.com) 공연은 그 자체로 병든 이들에게 훌륭한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사회를 볼 때 즉흥적으로 뒤풀이 삼아 못하는 노래도 하면서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려 합니다. 치매 탓에 무표정하고 무감각한 것 같지만 어르신들 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젊은 시절의 한순간을 떠올리며 저희 공연과 함께 한다는 걸 말이죠.”(박종필 서울시무용단 지도단원)

그의 말대로 서울시무용단 공연에서는 다른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뒤풀이와 공연 중간 중간 단원들의 즉흥적인 추임새가 특징이다. 노인 관객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서다. 그래서 노인들의 호응도 크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고 한다.

“치매를 앓는 어르신들에게 공연의 감흥은 6개월이나 간다고 합니다. 실제로 저에게 다음 공연 날을 물으며 애타게 기다리시기도 하고요. 그러니 작은 공연일지라도 얼마나 큰 안식이 되겠어요?”(전통타악연구소 방승환 대표)

한 할머니가 서울시무용단의 공연 뒤풀이에서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한 할머니가 서울시무용단의 공연 뒤풀이에서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서울여자간호대학 김영애 교수(간호학)는 나눔공연이 노인들의 고립된 삶을 해소하는 데 적잖은 힘이 된다고 했다. “병들었다고 단절된 생활을 하는 건 좋지 않아요. 지역사회 구성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죠. 그래서 공연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자극과 안정을 심어드리려는 거예요.”

나눔공연에서 노인 관객들의 집중력은 매우 높다. 그것이 젊은 날 숱하게 접해 익숙한 한국무용이든 낯선 연극이든 관계없다. 시립강북노인종합복지관 임슬기 사회복지사의 말이다.

“일전에 서울시극단의 연극공연을 마련했는데, 어르신들의 호응이 매우 컸어요. 물론 배우들이 어르신 관객에 맞춰 애드리브를 한 덕도 컸지만 장면마다 박수를 치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눈으로 보고 그것이 마음으로 통해 몸짓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르신들의 호응은 진정으로 우러나와 하는 것이고 무대에 선 단원들의 기쁨도 그만큼 커지는 거죠.”(최효선 서울시무용단 지도위원)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 가슴을 울리는 장단, 신명나는 노랫소리…. 이는 병석의 노인들뿐 아니라 바쁜 일상사에 쫓기는 많은 현대인에게도 휴식처임이 분명하다.


▼ 서울시합창단 오세종 단장 “위안을 주고받는 음악, 그 효과는 상상이상” ▼

“공연장이 열악해도 음악으로 나누다 보니 다들 기분이 좋아져서 갑니다. 특히 병원 공연에선 환자나 그 가족, 병원 직원들 모두 위안을 받고 즐기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도 기뻐지지요.”

올 2월부터 서울시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는 오세종 단장(63·사진)은 환자나 노인 등 공연장을 찾기 힘든 계층이 일반 관객보다 나눔공연을 마음으로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런 만큼 이들은 어느새 합창 공연과 친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즐거움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말이지요.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건 물론이죠.”

오 단장은 노래를 부르는 이와 듣는 사람이 서로 통할 때 음악이 주는 효과는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그래서 작은 무대일지라도 단원들은 프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서울시청소년국악관현악단 김성진 단장
“국악에 세계음악 융합… 친숙-활력의 난장으로”


“국악은 세계 어떤 음악과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장르의 파괴를 넘어 서로 다른 장르를 포용하고 융합하는 거죠.”

서울시청소년국악관현악단 김성진 단장(54·사진)은 우리의 악기로 세계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국악의 세계화라고 했다. 그래서 김 단장의 나눔공연에선 국악과 안데스음악, 그리고 힘찬 타악이 어우러져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나눔공연의 관객들은 극장무대를 맘먹고 찾아온 이들과 달리 무심코 왔다가 감동을 받아요. 시쳇말로 필(feel)을 받는 거죠.”

김 단장의 나눔공연 키워드는 ‘친숙’이다. 활력 있는 소재에다 공연장, 청중 등에 걸맞은 대중적인 레퍼토리를 고민하면서 극장무대에 맞먹는 공력을 들인다고 한다.

“공연 분위기가 어수선해도 괜찮아요. 아이들이 떠들어도 공연에 오는 게 나아요. 떠들다 가도 음악이 좋아지면 집중하게 되니까 말이죠.”

박길명 나눔예술 특별기고가 m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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