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약아빠진 목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3일 03시 00분


전자상거래 피해자에 “사기범 잡았는데…”
공문서 위조 팩스까지… 변리사-판사도 당해

“광주 ○○경찰서 ○○○ 경관입니다. 일전에 신고하셨던 인터넷 사기범을 잡았는데 합의를 보시겠습니까?”

니콘 카메라 렌즈를 싼값에 사려다 사기를 당했던 최모 씨(35)는 인터넷 상거래 피해사례 정보 공유 홈페이지 ‘더 치트’(www.thecheat.co.kr)에 피해 사례를 올렸다가 이런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 경찰관은 “합의를 보려면 먼저 계좌에 보안번호와 일련번호를 입력해야 한다”며 친절한 태도로 최 씨를 현금자동지급기로 유도했다. 최 씨는 경찰의 안내에 따라 먼저 보안번호를 누른 뒤 일련번호 ‘3124789’와 확인 버튼을 눌렀다. 순간 최 씨는 또다시 312만4789원을 사기 당했다. 최 씨가 누른 보안번호는 사기꾼의 계좌번호였고, 일련번호는 송금액이었던 것. 피해액을 보상받으려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심리를 역이용한 또 다른 보이스피싱이었다.

범국가적인 예방 홍보 활동에도 보이스피싱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 아예 정부 공문을 위조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직업의 특성상 법무부 관련 공문을 자주 접하는 변리사 이모 씨(34)는 최근 ‘가처분명령서’ 공문을 그대로 믿었다가 4200만 원을 사기당했다. “계좌가 범죄에 이용돼 수사 중”이라는 전화와 함께 팩스로 들어온 가짜 가처분 명령서에서 “다른 통장으로 돈을 이체하라”고 적힌 안내문을 충실히 따른 게 화근이었다.

2, 3년 전 유행했던 ‘납치협박’ 유형도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달 16일 노모 씨(54)는 중국 톈진에 있는 아들이 납치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1000만 원을 보내라”는 협박범의 음성과 함께 “몽둥이로 머리를 맞았어요. 아버지 살려주세요. 무서워 죽겠어요”라는 목소리를 들은 노 씨는 아들의 목소리로 착각해 이성을 잃고 현금 380만 원을 송금했다.

보이스피싱 수사 베테랑인 서울동작경찰서 신동석 경감은 “납치협박 보이스피싱의 경우 집요하게 말을 이어가며 전화를 끊지 못하게 압박하는 사례가 많은데 급한 마음에 바로 돈을 보내지 말고 전화를 끊은 뒤 경찰에 신고하라”고 말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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