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에 빠진 아이들]습관적으로 ‘×발’ 내뱉는 아이들, 선생님이 원래 의미 알려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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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4일 03시 00분


《“×이나 밟아라 ○새퀴야.” “△병할…꺼져.” “○소리 집어쳐.” 스마트폰 화면을 칠 때마다 무미건조한 남자 목소리의 욕이 튀어나온다. 얼마 전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욕 앱(애플리케이션)’이다. 앱을 열면 100개가 넘는 욕이 등장하고 하나를 골라 화면을 치면 해당하는 욕이 녹음된 음성으로 나온다. ‘대놓고 욕해줌’이라는 이 앱은 출시 일주일 만에 다운로드 횟수 13만 건을 기록했다. 설치 방법은 나이를 불문하고 간단하다. 앱 검색에서 ‘욕’을 친 뒤 설치하면 된다. ‘만 17세 이상이 맞으면 OK를 누르라’는 안내문이 뜨지만 무시하면 그만이다.》

○ 욕설이 지배하는 10대들의 언어

청소년들 사이에서 ‘욕의 인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 채팅방이나 메신저에 들어가 보면 ‘욕방’ 등의 이름으로 ‘욕배틀(battle)’이 한창이다. 방을 개설한 사람이 심판을 맡아 참가자들이 서로 말문이 막힐 때까지 욕을 내뱉는데 참가자 대부분이 청소년이다. 욕 앱의 등장도 10대들의 언어습관을 그대로 반영한 산물이다.

청소년들의 욕설 사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최근 욕을 사용하는 청소년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 정도도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 동수영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유승우 씨(35)는 “우리 때도 욕은 많이 썼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최근에는 성별, 나이, 성적을 불문하고 욕이 일상화됐고 쓸 욕 안 쓸 욕도 구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10일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진행 중인 서울 시내 고등학교 두 곳을 찾았는데 곳곳에서 어렵잖게 욕을 들을 수 있었다. “야, 그거 ‘개’재밌어.” “×발, 미친 ○끼.” “옆에서 어떤 년이 쳐다보는데 존나(웃음).” 남학생은 말 한마디에 욕이 두세 개씩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여학생의 경우 남학생만큼은 아니었지만 ‘×발’ ‘존나’와 같은 말들은 수시로 사용했다. 서울의 한 여고에 재학 중인 김소연 양(18)은 “×발, 존나 같은 것은 이제 욕으로도 안 친다”며 “심한 욕은 일부 애들만 쓰지만 간단한 욕은 반 1등, 반장도 입에 달고 산다”고 말했다.

욕을 사용하는 나이 하한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10일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를 찾아 설문조사를 했다. 방과후학교 영어·수학교실을 수강하는 1, 2학년 60명과 4, 5학년 14명을 대상으로 ‘평소 사용하거나 자주 듣는 욕을 적어보라’고 하자 저학년들은 욕을 잘 모를 거라는 기대와 달리 1, 2학년과 4, 5학년 학생들의 응답에 큰 차이가 없었다. 1, 2학년 아이들은 ‘×발’ ‘존나’ ‘○새끼’와 같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욕은 물론이고 ‘갈보’ ‘니△럴’ ‘호로년’같이 아이들이 쉽게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은 욕설을 적어냈다.

일선 교사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전한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이수진 씨(31·여)는 “아이들이 심한 욕을 써도 충격적이라기보다는 ‘녀석, 심하게도 말하네’ 하는 생각이 들 뿐”이라며 “아이들이 욕을 너무 흔하게 사용해서 그런 모양”이라고 말했다.

○ 일선 학교의 바른말 쓰기 움직임

아직은 미미하지만 일부 교사와 학교를 중심으로 10대에게 올바른 언어습관을 심어주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동수영중 교사 유승우 씨는 매년 자신이 맡는 학급 아이들에게 ‘욕 강좌’를 하고 있다. 아이들 대부분이 뜻도 모르고 욕을 하는 터라 욕에 담긴 뜻을 알려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욕”이 확실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발’과 같은 욕의 경우 ‘○할’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해요. 원래 ○할은 ‘○질을 할’을 줄인 말인데 이 말은 ‘성교를 할’이란 뜻입니다. 이걸 알려주면 아이들이 충격을 받죠.”

서울 중구 신당초등학교는 학교 차원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2일 미디어제작 수업이 한창인 신당초교 5, 6학년 방과후학교 교실. 김현호 군(11)이 친구 이정민 군(11)의 컴퓨터 화면을 가리키며 “이거 내려받을 수 있는 거예요” 하고 묻자 이 군은 “이걸 어떻게 내려받아요, 이렇게 하는 건데요” 하고 바른 방법을 가르쳐줬다. 이렇게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은 두 어린이만이 아니었다. 마주 앉은 문예진 양(11)은 친구 장은솔 양(11)을 “은솔 님”이라고 불렀다.

이 학교는 2007년 개교 이후 4년째 학생들에게 교내 높임말 사용을 권하고 있다. 교사들에 따르면 여러 지역에서 온 아이들이 서로 배려하도록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것이 인성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보고 높임말 교육을 이어가게 됐다.

신당초교 이재옥 교감은 “다른 학교에 있다가 2008년 9월 이 학교에 부임했는데 아이들의 인성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며 “다른 학교와 달리 평소 복도에서 고성이나 욕설이 들리는 경우가 없고 다른 학교 아이들이 욕하는 것을 들으면 교사에게 ‘왜 저 아이들은 저런 나쁜 말을 쓰느냐’고 물을 정도”라고 전했다. 개교 때부터 이 학교를 다닌 장소희 양(12)은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높임말을 쓰니 친구들끼리 하는 싸움도 적어지고 욕도 안 해서 좋다”고 말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임도 있다. GSGT(Good Student Good Teacher)는 2002년 학생과 교사가 함께 만든 청소년 바른 문화 만들기 모임이다. 이 단체는 온·오프라인에서 바른말 사용하기, 인터넷상 음란물 없애기 같은 청소년 문화 개선 운동을 꾸준히 벌여 오고 있다. GSGT 대표인 서울 광남중 교사 정미경 씨는 “욕설이 청소년의 하위문화라거나 어른사회에 대한 대항문화라는 것은 바른말을 사용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어른들의 책임 회피”라며 “학교와 집에서 꾸준히 가르치고 순화한다면 아이들의 언어생활은 그만큼 변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동영상=습관적으로 ‘X발’ 내뱉는 아이들, 우리는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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