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고등학교에는 이른바 ‘백계단’이란 게 있다. 산중턱에 난 후문으로 이어지는 이 계단의 수가 100개 남짓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주위는 으슥하지만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몰래 빠져나가려는 학생들이 ‘애용’하는 백계단. 하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다가오면 고3들은 이 계단을 꺼린다. 더 가파른 비탈길을 이용해 정문으로 오가는 수고를 자처한다. 왜일까? 다음은 이 학교 고3 최모 양의 설명.
“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 무의식적으로 계단 수를 셀 때가 있잖아요? 숫자 ‘100’을 입으로 말하거나 속으로 의식하면 그해 대입에 실패하고 재수한다는 얘기가 떠돌아요. 저도 친구와 백계단을 오르면서 재미삼아 계단을 세어본 적이 있는데요. 다행히 3개씩 끊어서 3의 배수로 숫자를 센 덕분에 ‘100’을 세지 않을 수 있었어요. 내심 ‘재수는 안 하겠구나’ 기뻐했어요.”
일부 학생은 ‘백계단 전설’을 ‘수능을 앞둔 시점이므로 야간자율학습을 빼먹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자’는 뜻이 담긴 경고성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수능일이 다가오면 대입 수험생들 사이엔 ‘수능 미신’이 고개를 든다. ‘이렇게 하면 대학에 떨어진다’든가 ‘이렇게 하면 꼭 붙는다’는 낭설이 심각한 전설이 되어 가뜩이나 불안한 수험생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도전 엘리베이터’라는 미신도 있다. 서울의 한 여고에서 내려오는 얘기. 이 학교 5층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외부손님 위주로 가동하기 위해 ‘학생 절대 이용 금지’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학생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다 적발될 경우 학교로부터 벌점을 받는다. 하지만 수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요즘이면 이 엘리베이터를 몰래 이용하는 ‘간 큰’ 수험생들이 급증한다는 것.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직후나 방학 중엔 ‘만원’이란 표시가 뜰 만큼 엘리베이터는 수험생들로 가득 찬단다.
왜 그럴까? 이 엘리베이터를 100회 이상 타면 서울대에 합격한다는 전설 아닌 전설 때문이다. 고3 김모 양은 “엘리베이터 타는 횟수를 채우기 위해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면서 교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탄 뒤 위아래를 마구 오가는 친구도 있다”면서 “1학년 때부터 벌점 받아가면서도 엘리베이터를 열심히 탄 친구가 있었는데, 실제로 6월 모의고사에서 외국어 영역이 10점 넘게 올랐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는 ‘지난해 전교 1등을 한 선배가 공부했던 자리에서 공부하면 성적이 오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그래서 전교 30등까지의 학생들이 모여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심화반’의 학생들은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앞두고 1등 선배의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특히 이 자리는 창가에서 한 개 열이 떨어져 있고 앞에서 두 번째 줄인지라 창문을 살짝 열어놓으면 맑은 공기도 가까이에서 마실 수 있고 친구들이 화장실을 오가도 방해받지 않은 채 공부할 수 있는 ‘명당’으로 꼽힌다.
고3 차모 군(18)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저녁을 샌드위치나 빵으로 때울 때도 있다”면서 “공부가 안될 때 그 자리에서 기(氣)를 한 번 받고나면 집중력이 재충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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