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16일 올해 대입 수시모집 입시요강을 발표하면서 ‘공통지원서를 쓰도록 했다’고 발표했다. 똑같은 내용을 여러 번 적어야 하는 불편을 줄이고 전형료 부담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지금까지 학생들은 원서 접수 대행업체를 통해 온라인으로 원서를 냈다.
그러나 정작 일선 학교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올해부터 학생들이 대교협 홈페이지를 통해 원서를 내지만 실무는 여전히 대행업체 몫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대교협 홈페이지에서 대행업체를 골라 대학에 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결국 대학(갑)과 대행업체(을)가 기존에 맺은 계약에 대교협(병)이 끼어든 셈이다.
여기에 원서 작성을 한 번만 해도 된다는 대교협의 발표 역시 학교 현장에서는 냉소를 보내고 있다. 대교협은 6개 공통 항목을 정해 학생들이 입력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대학에서 질문을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대학마다 서로 다른 질문을 추가하면 학생들은 이전처럼 대학별로 원서를 작성해야 한다. ‘원서 작성 부담을 줄어준다’던 당초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서울 A대학 입학처장은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대학마다 다른 학과에 지원할 텐데 똑같은 자기소개서로 평가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 B고교 교사도 “예전에도 자기소개서의 큰 틀은 유지한 채 희망 학과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바꾸는 게 관례였다. 자기소개서는 일일이 손으로 쓰는 게 아니다”면서 “사실상 무한 복수 지원이 가능한 수시 모집에서 자기 장점을 최대한 드러내는 게 자기소개서라는 사실을 대교협이 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서울 C고교 교사도 “수시에서는 자기소개서의 내용이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인데 어느 학생이 대교협 발표대로 원서를 한 번만 작성하겠냐”고 반문했다. 이 교사는 “공통 지원서로 원서 전형료 부담을 줄였다는 대교협의 발표는 심하게 말하면 사기극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대교협이 원서 접수 실무를 맡지 않는 데다 대학별로 각기 다른 원서를 작성할 수도 있어 수험생 전형료 부담은 지난해에 비해 전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입시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학생들이 느끼는 변화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교협은 학생들이 공통 지원서에 주민등록번호 주소 e메일 출신학교 같은 개인 정보를 한 번만 입력하면 여러 대학에 제공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이 역시 학생들은 이미 대행업체 홈페이지에 가입할 때 이 정보를 한 번만 입력해 왔다.
서울 D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대교협이 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새로운 방안을 밀어붙여 일선 학교의 입시 업무에 혼선만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관계자는 “대교협의 계획대로 되려면 자체적으로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데 대교협 내에 프로그램 연구팀조차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대교협이 지난달 공개한 자기소개서 공통양식 예시안. 최종안은 6개 공통 항목을1000자 내외로 적도록 했다. 그러나 일선 대학이 이미 자체 자기소개서 양식을 공개한 상황이라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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