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고등학교가 개학을 맞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85일 앞으로 다가왔다. 고3 수험생들은 수능만을 바라보며 단 1점을 올리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수능이 끝이 아닌 수험생이 있다. 수능 후 실기시험을 봐야 하는 예체능계열 수험생이다. 지난 여름방학에도 이들은 체육관에서, 미술학원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했다. 특히 일반계고에서 예체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괴로울 때가 많다. 보충학습에 빠질 때면 유독 교사와 친구들의 눈빛이 따갑게 느껴진다. “예체능은 실기만 좀 하면 웬만한 대학은 간다더라”는 말을 들으면 허탈하다.
일반계고 예체능 수험생은 어떻게 방학을 보냈을까. 그들의 애환과 고민을 들었다.
학생들은 하루를 수능과 실기 준비로 쪼개 살았다. 체육교육과를 목표로 하는 서울 C여고 3학년 고모 양(18)은 학교가 끝나면 체육관으로 향했다. 오후 6시부터 기초체력훈련으로 몸을 푼다. 허리와 팔, 다리를 모두 꼬면서 옆으로 뛰는 ‘트위스트’, 허리를 구부리고 옆으로 뛰는 ‘사이드 스텝’ 등 20개의 다른 동작을 차례로 하면서 체육관 끝에서 끝까지 20회를 왕복한다.
고 양은 “기초운동을 하지 않으면 다치기 쉬워 반드시 몸을 풀어야하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먹은 것이 다시 올라올 정도로 힘들다”고 했다. 윗몸일으키기 300회, 기마자세로 3초를 버텼다가 바로서기를 반복하는 ‘투명의자’ 훈련은 매일 20회씩 3세트를 한다. 근육엔 이미 감각이 없다. 그는 “못 견딜 정도로 아플 때 한 동작이라도 더 해야 한다”고 했다. 휴식시간은 단 1분. 처음엔 “1분 쉴 거면 뭐 하러 쉬라고 하느냐”며 트레이너에게 불평했던 고 양은 이젠 5초, 20초 단위로 쪼개서 쉬는 경지에 이르렀다. 오후 10시까지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오전 1시 반까지 공부한다.
미술을 전공하는 고3 김모 양(18·경기 성남시 분당구)은 방학 동안 일주일에 50시간을 미술학원에서 보냈다. 여름특강 때문이다. 오전 6시 50분에 일어나 학교에 갔다. 쉬는 시간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미술학원에 갔다가 집에 오는 시간은 오후 11시. 등받이도 없는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4시간쯤 그림을 그리다 보면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김 양은 “차라리 실기에 집중하는 방학보다 개학하는 편이 좋다”면서 “방학 내내 온몸이 무거웠고 두통에 시달렸다”고 했다. 중학교 때까지 상위권이었던 김 양은 고등학교에 올라와 성적이 조금씩 떨어졌다. 그는 “다른 친구들은 수능에 ‘올인(다걸기)’하는데 난 그림과 병행하니 어쩔 수 없이 처진다”고 하소연했다.
실기는 평가자가 아닌 이상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만큼 준비하면서도 불안감이 크다. 대학 문예창작과를 지망하는 고3 오모 양(18·서울 노원구)은 고2 때부터 지금까지 70편이 넘는 소설과 수필을 썼다. 방학 때는 컴퓨터 앞에 앉아 한나절 글을 쓰다가 밥을 먹고 다시 앉아 4시간씩 글을 썼다. 수능 전까지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없다. 얼마 전엔 대학이 주최하는 공모전에 낼 원고지 70장 분량의 단편소설을 완성해 놓고 6번을 고쳐 썼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낼 수 없었다. 쓸 때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오 양은 “친구들은 ‘시 한편 잘 써서 대학 보내준다면 하루에도 몇 편씩 쓰겠다’고 한다”면서 “일반고 친구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 예체능하는 애들끼리 모여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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