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법원이 징역형뿐 아니라 벌금형에 해당하는 피고인에게도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으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고무줄 잣대’ 논란을 빚은 작량감경(酌量減輕)의 요건이 엄격히 제한되고, 상습범이나 재범 위험성이 높은 범죄자에게는 보호감호 처분이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57년 만에 대대적으로 손질되는 형법 개정시안이 25일 법무부가 주관한 공청회에서 공개됐다. 이 형법 시안은 최근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가 마련한 것이다.
현행 형법은 징역형에 대해서만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게 돼 있지만 개정시안은 이보다 가벼운 벌금형에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게 했다. 벌금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집행유예 기간에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경우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 때는 △보호관찰 △사회봉사명령 △수강명령을 함께 내릴 수 있게 했고, 집행유예 기간에 범죄를 저질러 1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때는 다시 한 번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법무부는 벌금 300만 원 이하의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저소득층에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으며, 연간 수십만 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내다봤다.
형법에 명시된 형벌의 종류도 현행 9개에서 4개로 대폭 줄였다. △사형 △징역 △벌금 △몰수 등 4개만 남기고 실제 활용되지 않거나 보안처분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구류 △과료는 모두 법전에서 삭제했다.
개정시안은 형의 절반을 깎아주는 작량감경의 조건도 △범행 동기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 △피해가 회복된 경우 △피고인이 자백한 경우 △기타 참작할 만한 사유 등 5가지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국가 발전에 기여’ ‘반성’ ‘음주’ ‘자녀 부양’ ‘신체 질병’ 등 불명확한 이유로 법원에서 형을 낮춰주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개정시안에선 상습범이나 누범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을 삭제했다. 다만 방화, 살인, 강간, 강도 등의 범죄를 저질러 3회 이상 징역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형기 합계가 5년 이상인 사람이 출소 후 5년 안에 다시 1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을 때 보호감호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는 이날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과 법원 등 관계기관의 의견을 수렴한 뒤 연말까지 형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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