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고등학교 전교회장 2학년 김모 군(17). 그는 8월 말 열린 학교축제에 연예인을 섭외하기 위해 학생회 대의원 15명과 함께 두 달 전부터 ‘연예인 모시기 대(大)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대형기획사의 고위직에 학교 선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학생회 대의원들과 논의 끝에 이 선배를 적극 공략하기로 했어요.”(김 군)
김 군은 학생회 대의원 중 평소 글 실력이 좋기로 유명한 문예부장과 함께 선배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했다. ‘평소 동문 중 누굴 가장 존경하느냐 물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 선배님이라 말했다’ 등 선배의 마음을 흔들기 위한 ‘아부성’ 멘트가 대부분. 이후 동문회장을 찾아가 이 편지를 해당 선배에게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면 편지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할 거란 판단에서였다.
2주 후 기다리던 답장이 왔다. 결과는 대성공. 김 군은 “요청했던 연예인 한 팀 외에도 두세 명이 더 축제에 온다는 얘기를 동문회로부터 들었다”면서 “연예인 섭외 성공 후 대의원과 학교 선후배 사이에서 능력 있는 전교회장이란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요즘 고교 축제에선 ‘연예인 섭외’가 커다란 경쟁력이 됐다. 인기 아이돌 그룹을 축제에 초청한 학교는 학생들 사이에서 일순간 ‘명문고’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로 학교축제를 총괄하는 전교회장들은 축제 2, 3개월 전부터 ‘연예인 모시기 작전’에 돌입한다. 앞의 김 군처럼 인맥으로 섭외한 경우는 수월한 편이다. 학교에 아무런 인맥이 없다면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서울의 한 여고 2학년이자 전교회장인 박모 양(17)은 3주 전 일요일 오후 6시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공연이 열리는 서울 홍익대 인근의 작은 힙합클럽을 찾았다. 공부에 한창 바쁠 시기에 박 양이 거금 2만 원을 내고 공연을 보러 온 이유는 뭘까? 당일 공연한 언더그라운드 가수를 9월 초 열릴 학교축제에 섭외하기 위해서였다.
“학교 예산 때문에 인기 가수를 초청하긴 무리였거든요. 학생회 회의를 통해 잘생겼단 이유로 요즘 언더그라운드에서 뜨고 있는 가수를 섭외하기로 했어요. 초대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요.”(박 양)
평소 언더그라운드 무대에 관심이 많던 친구로부터 ‘공연이 끝나면 가수와 직접 얘기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은 박 양. 하지만 이게 웬일? 공연을 마친 가수는 대화는커녕 눈빛을 교환할 새도 없이 무대 뒤로 사라졌다. 박 양은 “이대로 실패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면서 “하지만 연예인 섭외를 못하면 축제에 차질이 생길 뿐만 아니라 회장의 능력도 의심받을 수 있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해당 가수의 소속사 연락처를 알아내고 e메일을 보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학교에서 ○○○ 님은 ‘빅뱅’급 스타예요. 학생들 모두가 이번 축제에서 ○○○ 님을 보길 원해요. 고등학교 축제라 드릴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지만, 좋은 취지에서 열리는 축제이니 꼭 와주셨으면 해요.’
다음 날 소속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축제날 스케줄이 없어서 참석할 수 있다’는 것. 박 양은 “예상보다 비싼 초대비용 탓에 축제 예산의 3분의 1을 연예인 섭외에 쓰게 됐다”면서 “학교축제도 유명해질 수 있고 내 능력도 인정받을 수 있단 생각을 하면 그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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