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포커스]‘생태박물관’ 제주 하논 분화구 방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31일 03시 00분


지표면 보다 낮게 형성된 국내 최대 마르형 분화구… 논-과수원으로 쓰여

국내 최대 규모 마르형 분화구로 알려진 제주 서귀포시 하논 분화구. 살아있는 자연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됐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국내 최대 규모 마르형 분화구로 알려진 제주 서귀포시 하논 분화구. 살아있는 자연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됐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벼가 알알이 열매를 맺고 누렇게 익어갔다. 주택 주변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슬에 묶인 개들은 이방인 방문에 목청을 한껏 높였다. 그 옆에서 말 10여 마리가 진흙 방목장을 한가로이 거닐었다. 28일 찾은 서귀포시 ‘하논’은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조그만 표석 하나가 국내 최대 규모 마르(Maar)형 분화구라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 하논 분화구 방치

하논 분화구는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과 서홍동 경계지역 일대로 동서로 1.8km, 남북으로 1.3km에 이르는 타원형 화산체. 화산체 중심에는 원형의 분화구가 형성됐고 내부에 또다시 소규모 화산체인 ‘보로미’가 있다. 이중화산체인 셈이다. 화구륜을 포함한 면적은 81만 m²(약 24만5000평)로 분화구 바닥면적은 21만6000m²(약 6만5000평) 규모.

지표면보다 낮게 형성된 오름(작은 화산체)을 마르형 분화구로 부른다. 지하 쇄설물이 분출해 오름 산체를 만든 것이 아니라 가스가 분출하면서 빠져나간 공간이 압력 차이로 내려앉아 만들어졌다. 그 위에 퇴적물이 쌓여 현재 형태를 갖췄다.

분화구 내부는 대부분 논, 과수원 등 경작지로 이용하고 있다. 분화구 사면 등에 농업용 창고, 비닐하우스 등 140여 개의 시설물이 있다. 일부 시설물은 폐허로 변했다. 한때 개 200여 마리를 키우던 사육장도 남아 있다. 학술적, 생태적 가치는 찾아보기 힘든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 살아있는 생태박물관

하논은 ‘논이 많다’는 뜻. 1500년대부터 벼농사를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벼농사를 위해 동남쪽 사면을 허물어 물길을 만든 것으로 학계에서 보고 있다. 하논의 중요성은 1980년대 고대 기후를 연구하는 일본인 학자 등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남극 탐험대 세종기지팀, 서울대 등에서 고대 기후 및 고식생 연구, 화산 및 지질연구 등을 진행했다. 서울대 연구팀은 2003년 이탄(泥炭)습지 4∼5m 깊이에서 고(古)기후를 판정하는 데 유용한 미기록 광물질인 ‘남철석’을 국내 최초로 발견하기도 했다.

하논은 ‘자연의 타임캡슐’로 불린다. 이탄습지를 비롯한 퇴적층 연구를 통해 동북아의 고기후 및 고생물을 분석하고 미래기후를 예측하는 연구의 최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탄습지에 수만 년 전 식물의 꽃가루를 비롯해 당시 미생물, 고등동물의 사체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서귀포시는 2005년 하논 복원사업 용역을 마치고 예산 750억 원을 정부에 요청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서귀포시는 이후 사업 추진을 중단했다가 최근 정책자문기구인 ‘비전21’에서 핵심 과제로 선정하면서 재추진 의사를 강하게 밝혔다. 서귀포시는 토지를 매입할 경우 논밭을 포함한 습지 21만6000m²로 한정해 130억 원의 비용을 산출했다. 생태탐방로 등 관련 시설물 설치까지 포함해 전체 예산 170억 원을 정부에 요청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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