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 도심에 ‘행복 주식회사’ 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31일 03시 00분


신수동 주민 30명이 설립… 옥상 등 자투리공간 활용 야채 생산

‘신수동 행복마을주식회사’ 대표 이평심 씨(왼쪽)와 회장 송기창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주민 주주들이 26일 오후 주민센터 옥상 텃밭에서 두부와 도넛 등 생산품을 내보이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짓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신수동 행복마을주식회사’ 대표 이평심 씨(왼쪽)와 회장 송기창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주민 주주들이 26일 오후 주민센터 옥상 텃밭에서 두부와 도넛 등 생산품을 내보이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짓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주민센터 4층에서는 두부를 만드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옥상에서는 100m²(약 30평)에 조성된 텃밭을 가꾸는 자원봉사 주민들이 구슬땀을 흘렸다.

이들은 올해 5월 ‘신수동 행복마을 주식회사’를 설립한 ‘주민 주주’들이다. 주민 주주 30명은 5만∼100만 원씩 출자해 자본금 2000만 원의 회사를 출범시켰다. 생산품은 두부와 콩나물, 고추, 토마토, 가지, 파 등 다양한 야채다. 서울 도심 부근 동네지만 각 가정에 시루를 들이고 옥상과 자투리 공간, 실내용 재배용기를 이용해 도시농업을 사업화했다. 주민들이 생산한 뒤 이웃에게 팔거나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지원하는 등 공익성도 강하다.

○ 도시 주민들의 농사 비즈니스

출자자는 물론 신수동 주민자치위원회 부녀회원들을 중심으로 주민 70명이 전통 시루에서 콩나물을 키워내고 있다. 콩은 자매결연 도시인 충북 충주시 금가면 농민들에게서 공급받고 있다. 항생제 없이 맥반석과 숯을 거친 정제수를 하루 7차례 뿌려주면서 재배한다. 이 때문에 다소 질기고 잔뿌리가 많은 예전 시골의 맛이 난다는 게 강점. 여름철 더 잘 자라는 콩나물은 요즘 3, 4일 지나면 수확할 수 있다. 매주 화요일 신수동 주민센터 앞 장터에서 콩나물 한 봉지(400g)는 2000원에 팔려나간다. 이웃들이 전통 시루에서 국산 콩으로 키웠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이날을 기다리는 주민이 적지 않기 때문.

회사를 세운 주민들은 콩나물뿐 아니라 주민센터 옥상 텃밭에 고추와 가지, 오이, 토마토를 심었다. 집에서 야채 키우기를 희망하는 주민 200명에게는 실내용 재배 상자를 보급해줬다. 이렇게 생산된 각종 야채는 시중 판매용에 비하면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 돈을 받고 팔지는 않는다. 그 대신 지역 내 저소득층 50가구를 선정해 이들에게 매주 한 차례 수확한 야채를 전달해주고 있다. 이런 시스템에는 신수동 내의 신석초교, 신수중학교, 광성중고교가 참여해 학생 봉사활동의 터전이 되고 있다.

충주 주민들에게서 공급받는 콩으로는 콩나물뿐 아니라 두부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에 계란을 섞어 도넛을 만들어 판다. 역시 매주 화요일 열리는 장터에 당일 두부 250개를 만들어 내놓는다. 회사 설립 이후 지금까지 못 팔고 남은 두부나 도넛은 없었다고 한다.

○ 공동체 의식과 일자리는 덤

신수동에서 지하철로 4, 5개 역을 지나면 서울 도심이다. 오래된 주거지가 많아 재건축 논의가 한창인 것도 특징이다. 개발 이익이 클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 마음이 갈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 하지만 도시 농업을 통한 주민 회사가 이런 갈등을 서서히 봉합하고 있다. 매주 한 번씩 장터를 찾아 서로를 격려하고 정을 나누는 모습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평심 행복마을주식회사 대표(56·여)는 “시골풍 콩나물과 두부, 각종 야채를 보며 정겨웠던 시절을 떠올리기 때문에 지역 사회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경력단절 여성을 채용하는 등 주민의 손으로 주민 일자리를 더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다음 달 10일 서울시로부터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고 맞춤형 도시락 배달, 주택청소 등의 분야로 사업 영역을 늘리면 연말에는 주민 80명을 고용해 월 80여만 원의 월급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근 학교에서도 급식용으로 두부 주문을 검토하고 있어 이 회사가 고용할 주민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아직까지 월급을 받는 직원은 2명뿐. 출자자를 포함한 콩나물 재배 참여 주민 모두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다.

회사 설립 아이디어를 내고 주민 참여를 이끌어 낸 송기창 회장(55·주민자치위원장)은 “모두 자원봉사인데도 사업에 동참하겠다며 시루와 야채재배상자를 보내달라는 주민이 갈수록 늘고 있다”며 “주문처도 늘고 있으니 ‘주민회사’가 성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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