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수도권 남부의 대표적인 산행지인 광교산 곳곳에 현수막이 걸렸다. 현수막에는 ‘산림 보호 및 등산객 안전을 위해 산악자전거(MTB) 등산로 이용을 통제합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경기 수원시가 “MTB 때문에 산이 훼손되고 사고 위험이 높다”는 등산객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설치한 것이다.
그러자 MTB 동호인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동호인들은 수원시 홈페이지 등을 통해 “MTB는 산에서 즐기는 스포츠인데 법적 근거도 없이 통제하는 것은 잘못된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등산객은 시민이고 자전거 타는 사람은 죄인이냐”며 “일방적으로 한쪽의 희생만을 강요해 산 속에서 편싸움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항의가 이어지자 수원시는 1주일도 안 돼 현수막을 철거했다.
○ “등산만” vs “자전거도”
현수막은 철거됐지만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등산객과 MTB 동호인이 계속 증가하고 있고 레저활동이 증가하는 가을을 맞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4일 오전 광교산에는 태풍이 지나간 뒤 맑게 갠 날씨의 영향으로 등산객이 줄을 이었다. 휴일 광교산에는 1만2000여 명의 등산객이, 주말에는 많게는 3만 명이 찾는다. 산을 찾는 MTB 동호인은 평일 100여 명, 주말 500명으로 추산된다.
이날 만난 등산객들은 “산행 도중에 MTB 때문에 위협을 느낀 적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20년 가까이 광교산을 올랐다는 김한규 씨(69)는 “내리막길에서 빠르게 내려오는 자전거 동호인에게 몇 번 주의를 주기도 했지만 별 반응이 없다”며 “대부분 젊은 사람들인데, 속도를 내며 과시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크고 작은 자전거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7월 중순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 버스종점에서 군 통신대 헬기장에 이르는 구간에서 자전거와 등산객이 충돌했다. 이 사고로 40대 여성 등산객이 머리를 크게 다쳤다. 또 같은 날에는 자전거 간 충돌 사고로 남성 동호인 1명이 긴급 이송되기도 했다. 신고되지 않은 경미한 접촉사고나 말다툼은 훨씬 많다. 이 때문에 수원시는 “안전을 위해 MTB의 등산로 통행은 자제돼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MTB 통행 자제를 당부하는 안내문 설치도 검토 중이다. 수원시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며 “MTB가 산 속에서 다니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자신을 ‘19년 동안 광교산에서 자전거를 탄 MTB 1세대’라고 밝힌 50대 중반의 한 동호인은 “사람보다는 자전거가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무조건 MTB 통행을 막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상생(相生)’ 공감대가 중요
전문가들은 양쪽 모두 공존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등산객과 MTB 동호인 모두 상생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자전거동호회 김덕종 기술고문(43)은 “MTB가 등산객보다 ‘강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주의를 좀 더 기울여야 한다”며 “등산객을 지나칠 때 속도를 줄이고 ‘실례한다’라는 인사만 해도 불필요한 마찰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산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대책도 당부했다. 광교산에서 산악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양창호 한국산악특수구조대 대장(44)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자체에서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문이나 사고예방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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