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근대 요정인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오진암(梧珍庵)이 57년의 ‘영욕’을 뒤로하고 사라진다. 서울시 등록 음식점 1호 업소인 오진암은 1970, 80년대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 정치인과 기업인 등 유력 인사들이 자주 찾던 곳으로 유명하다.
8일 서울시와 종로구에 따르면 1953년 오진암을 인수해 50여 년간 운영해온 주인 조모 씨(92)가 최근 건강 악화와 영업 부진 등을 이유로 4개월 전 한 부동산개발회사에 땅을 매각하고 지난달부터 영업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개발사 관계자는 “이달 초부터 기와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며 “최대한 오진암의 원형을 살리면서 건물을 신축할 계획이어서 이달 말까지는 작업이 계속될 것 같다”고 밝혔다. 부동산개발사 측은 오진암 자리에 호텔 신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진암은 1900년대 초 지어진 2310m²(약 700평) 규모의 단층 한옥.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실세 박성철 제2부수상이 만나 7·4 남북공동성명에 대해 논의한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1969년부터 오진암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2년 가까이 겨우 명맥만 유지하면서 어렵게 운영해오다 결국 문을 닫고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며 “전통을 이어가기 힘들 것 같아 착잡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진암은 걸어 들어오는 사람은 있어도, 소형차 타고 오는 손님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물급 인사들만 드나들던 곳이었다”고 아쉬워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말 오진암이 문화재로서 보존 가치가 있는지 기초조사에 착수했지만, 사유 재산은 소유자가 문화재 등록 신청을 하지 않는 이상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없어 더 진척은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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