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차령 줄기는 천안과 공주 쪽으로 갈리다가 보령시, 홍성군, 청양군 등 3개 시군 경계에서 홀연히 해발 791m의 오서산(烏棲山)을 만들어낸다. 오서산은 ‘까마귀가 많이 서식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정작 올라보면 까마귀를 보기 쉽지 않다. ○ 홀로 우뚝 섰으나 겸손한 산
이곳에선 서해안 대부분의 산들이 지니고 있는 구릉이나 연봉을 찾아볼 수 없다. 하나의 기슭이 정상까지 죽 이어져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손을 덜 탄 듯하다. 그러나 정상에 오르면 충남 서해안의 으뜸 산답게 차령의 모든 군락들이 발밑에 굽어보인다. 남으로는 성주산, 북으로는 가야산, 동으로는 칠갑산, 계룡산까지 관망할 수 있다. 서쪽으로는 서해의 크고 작은 섬들과 바다 위를 떠도는 선박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수평선 낙조 속에 울긋불긋 변모하는 간척지도 장관이다. 육해공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진귀한 산이지만 자신의 자태를 뽐내기보다 주위 경관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겸손한 산인 듯하다.
산행코스는 △오서산 자연휴양림(보령시 청라면)-월정사-약수터-통신안테나(억새숲)-오서산 정상-오서정-정암사-상담주차장(홍성군 광천읍)로 이어지는 3시간 코스 △성연주차장(보령시 청소면)-시루봉-통신안테나(억새숲)-오서산 정상-북절터-신암터-성연주차장으로 가는 2시간40분 코스가 주로 이용된다.
등산로 초입은 밋밋한 편이다. 광천 담산리 상담주차장 뒤에서 30분쯤 오르면 백제 고찰인 정암사가 나오고 이를 지나야만 본격적인 등산로가 열린다. 경사가 40도를 넘는 가풀막 길은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정도로 힘겹다. 그러나 8분 능선에 올라서면 오서산 산행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명물인 오서산 억새밭은 9분 능선쯤에서 나타난다. 이곳 억새는 서해 해넘이와 어우러진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금빛으로 물든 억새 능선 아래 서해 바다는 아늑하고 평화롭다.
○ 명대계곡과 오서산 자연휴양림
울창하게 자란 천연림 속으로 군데군데 소폭포가 있는 명대계곡과 오서산 휴양림이 나타난다. 오서산 자연휴양림(041-936-5465)은 산림청이 직접 운영한다. 150여 명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다양한 숲 속의 집이 있고, 숲속수련장, 맨발체험장, 숲체험로와 야영장이 잘 갖춰져 있다. 이곳에서 오서산 정상까지는 약 2.3km, 보통걸음으로 1시간 반이면 오를 수 있다. 명대계곡 초입에는 낚시터로 유명한 장현저수지와 역사적으로도 유래가 깊은 귀학정, 여섯 줄기가 모여 자랐다는 육소나무가 탐방객을 반긴다.
○ 오서 삼미
광천읍 담산리에는 ‘황보금산’이라는 광산이 있어 전국 제일의 산금량을 자랑했으나 지금은 폐광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서해포구 중에서 유일하게 철도가 지나 서해 도서민들의 교통 요충지였던 광천읍 독배항도 폐항돼 이제 옛날의 영화를 찾아볼 수 없다. ‘광천 독배로 시집 못 간 이 내 청춘’이라는 노랫말이 있을 정도로 광천은 부귀영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홍보(홍성보령)방조제 건립과 퇴적물로 항구의 기능이 사라졌다.
하지만 오서산 주변에는 ‘3미(味)’가 있다. 독배새우젓과 광천맛김, 홍성 남당항의 대하다. 독배마을 야산에는 30여 개의 토굴이 있어 이곳에서 숙성된 새우젓 등의 젓갈이 여전히 전국적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매년 가을이면 광천 독배마을에서 새우젓 대축제가 열린다. 광천 토굴은 1년 내내 섭씨 14도의 온도로 젓갈발효의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미식가는 물론 김장을 준비하는 주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광천김도 미식가들 사이에 최고로 꼽힌다. 서부면 남당항에서 잡히는 자연산 대하는 가을철이 제맛이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이 시리즈는 매주 목요일에 게재되며 동아닷컴(localen.donga.com)에서 언제든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제보도 가능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