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강도범, 피해女에 감동 ‘112 자진 신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14일 03시 00분


“내 신세한탄 들어주고 위로해줘 고맙소” 경찰도 불구속 입건

10일 오후 4시경 울산 중구의 한 영어학원. 학원장 A 씨(29·여)가 혼자 있는데 B 씨(35)가 찾아와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A 씨는 일단 B 씨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런 다음 어떤 목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싶은지를 묻는 순간 B 씨가 갑자기 흉기를 들이대고 금품을 요구했다. 깜짝 놀란 A 씨가 반항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코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고 바닥에 넘어졌다. B 씨가 당황하는 사이 A 씨는 바닥에서 일어나 남자를 의자에 앉히고 “왜 이러느냐”며 타이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B 씨는 “지난해 이혼하고 직장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금품을 털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독실한 종교인인 A 씨는 종교적인 노래가 담긴 MP3플레이어를 B 씨에게 건네며 “다시는 나쁜 짓 하지 말고 성실하게 살라”고 격려한 뒤 돌려보냈다. 하지만 B 씨는 20여 분 뒤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 A 씨에게 무릎을 꿇고 “나를 신고해 달라”며 울먹였다. A 씨가 “그러지 말고 가라”며 신고하지 않자 B 씨는 스스로 수화기를 들고 112를 눌렀다. B 씨는 경찰에서 “처벌을 받고 나면 새 사람이 될 것 같았고 원장에게 종교적으로 감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울산중부경찰서는 13일 학원에서 금품을 털려 한 B 씨를 강도상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자수한 점을 참작해 불구속했다”고 밝혔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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