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중생 살인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2심 선고를 기다리는 김길태(33·사진)가 '측두엽간질'을 앓고 있다는 정신감정 결과가 나왔다고 조선일보가 29일 보도했다. 김이 범행 당시에도 발작 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감정 결과여서 파장이 예상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법무부 산하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는 부산고법의 의뢰를 받아 6~17일 김을 정신 감정한 뒤 김이 ▲측두엽간질 ▲망상장애 ▲반사회적인격장애(사이코패스) 등 세 가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28일 관련 서류를 부산고법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김이 측두엽간질을 앓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사형선고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극심한 측두엽간질은 형법상 '심신장애'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측두엽간질은 뇌파 측정을 통해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병이다. 측두엽간질 발작이 일어나면 헛것을 보고 환청을 듣기 쉽다.
심한 경우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근거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난폭한 행동을 저지르며 발작이 끝난 뒤에는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다. 김은 검거 직후부터 일관되게 "범행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해왔다.
김은 검거 직후 받은 1차 정신감정에서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지만 현실판단 능력은 멀쩡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이 같은 감정 결과와 흉악한 죄질을 고려해 사형을 선고했다.
조선일보는 2차 정신감정의 경우 김의 변호인이 부산고법에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2차 감정을 담당한 국립법무병원 허찬희 의료부장(정신과 전문의)은 "보통 정신감정을 할 때는 피의자를 병원에 불러 한 달간 면담하는데 1차 감정은 김이 수감된 구치소에서 단 하루 동안 이루어졌다"고 이 신문에 밝혔다.
법무부 기록에 따르면, 김은 앞서 다른 성범죄를 저지른 뒤 8년간 복역할 때(2001~2009년) 형기의 절반을 정신질환을 앓는 범죄자들이 수감된 진주교도소에서 보냈다고 신문은 전했다.
허 부장은 조선일보에 "과거 의료기록과 이번 면담 결과로 볼 때 김은 정신분열증이 아닌 측두엽간질 환자"라며 "범행 전까지 수년에 걸쳐 간질약을 못 먹고 정신분열증 약만 먹은 것도 문제지만 출소 후에는 그나마도 관리가 안 돼 흉악범죄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김은 2005년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하루 1.5㎎씩 정신분열증 치료제(할로페리돌)를 복용하다가 출소 직전에는 하루 20㎎까지 복용량을 늘렸다. 정신분열증 환자 중에서도 중증 환자들이나 복용할 용량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형사법 전문가인 사법연수원 이용구 교수는 "2심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전례가 없어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해외 판례를 보면 적어도 사형은 선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국내에서 여성 절도범이 정신감정을 통해 '생리증후군' 진단을 받고 형량이 줄어든 사례는 왕왕 있었지만 김처럼 국민의 공분을 산 흉악범이 심신장애로 판명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교수는 "다만 아무리 심신장애로 인정돼 형량이 줄어든다 해도 격리 상태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될 뿐 석방될 가능성은 없다"고 이 신문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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