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등 ‘유럽 5개국 제도’ 현지 심층취재로 짚어본 한국의 현주소
도움 신청하러 이곳저곳 ‘뺑뺑이’… 원스톱 서비스 체제 갖춰야
요양사가 노인의 집을 방문해 수발을 들어주는 노인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친서민복지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복지 인력과 시스템 부족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주지 못하고 있다. 유럽처럼 수요자 중심으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야 복지 체감도를 높일 수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경기도 무한돌봄센터는 위기에 놓였지만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소외된 가정에 원스톱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자나 주변 사람들의 신청을 받은 시군구 담당 공무원이 직접 상황을 확인한 뒤 필요성이 인정되면 사흘 안에 지원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생계비(월 60만4000원), 연료비(월 10만 원)를 주고 의료비는 무제한 지원한다. 필요하면 출산, 장례비도 지급한다. 이 사업으로 혜택을 받은 가구가 4만2227가구이며 지원금이 489억 원을 넘었다.》
무한돌봄센터의 원스톱 서비스는 기존의 복지 서비스에 비해서 진일보한 것이 분명하지만 대부분의 복지 서비스는 여전히 공급자 중심이다. 수요자가 필요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선 주민센터, 사회복지관, 고용복지센터를 일일이 방문해 신청해야 한다. 또 소득, 자산, 부양가족을 기준으로 기계적으로 수요자를 결정하다 보니 복지가 필요한 사람은 정작 소외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사회복지 전달 체계의 비효율성 탓에 정부가 아무리 친서민 정책을 쏟아내도 현장에서 느끼는 복지 만족도가 낮은 이유다.
○ 사회복지예산 누수 연간 약 720억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사회복지 급여 대상자의 자격과 이력 정보를 통합한 ‘사회복지통합관리망’ 운영을 시작했다. 사회복지통합관리망에는 27개 기관, 218종의 소득 및 재산 자료, 서비스 이력정보가 연계돼 이 정보를 지방자치단체에 제공한다. 이 관리망 구축으로 공무원의 행정업무는 간편해졌다. 수요자도 이 관리망을 이용하면 어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서비스 제공이 각 부처나 기관으로 나뉘어 있어 수요자 입장에선 나아진 게 없다.
정부의 내년 복지예산은 총 86조3000억 원. 올해 복지예산(81조2000억 원)보다 5조1000억 원 늘었고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9%로 사상 최대다. 현 추세가 유지될 경우 공공사회지출이 201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8.9%에서 2040년 17.7%로 증가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조세부담을 늘려 복지예산을 충당하는 것이 한계가 있는 만큼 복지전달체계를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해 복지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2005∼2008년 감사원의 사회복지 분야 감사 자료를 취합 분석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사회복지 분야의 누수 예산은 2879억 원으로 매년 719억여 원씩 발생했다. 이는 전국 장애아동 1만7600명의 연간수당 226억 원의 3.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 유럽, 각종 복지급여를 한 곳에서
유럽은 이미 원스톱 복지 서비스를 실행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 시 밀브뤼셀 구에 있는 종합사회복지관(CPAS)의 위원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신청한 사람을 심사한다. 지원자 면담과 위원회의 토론을 거쳐 수급자로 결정되면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택급여 등 조세 부담 지원과 노령연금, 실업급여 등 사회보험 부담 지원을 한곳에서 받는다. 직업훈련을 받고 일자리를 소개받는데 마땅한 일자리가 없으면 CPAS에서 일을 시작한다. 벨기에는 구 단위로 CPAS 589곳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도 최저생계비(RMI), 장애급여, 가족수당을 가족수당금고(CAF)에서 한꺼번에 지급한다. 네덜란드는 2006년 중앙정부 차원에서 고용부와 복지부를 통합해 고용복지센터(CWI)를 운영한다.
독일은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독일 카리타스 연합회가 의료기관, 요양시설, 탁아시설 등 2만6000여 곳을 운영하며 123만여 명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 복지전달체계 통합 서둘러야
우리나라에서 원스톱 서비스가 안 되는 이유는 우선 사회복지 전문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읍면동 주민센터 사회복지 공무원은 한 명이 수백 명의 수급자를 맡다 보니 사후 관리가 되지 않는다. 지난해 전국 읍면동 주민센터 3464곳 중 사회복지 공무원이 1명인 곳은 1720곳이고 아예 한 명도 없는 곳이 48곳이나 됐다. 자격 미달인 사람들의 부정 수급이나 공무원의 횡령 가능성이 높다. 서울 양천구에서 지난해 적발한 사회복지 공무원의 26억 원 횡령도 관리 소홀을 틈타 발생했다. 전체 인구의 14%가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자 가구인 서울시의 부정 수급률은 3.18%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임무영 서울시 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은 “중앙정부가 정책을 쏟아내도 현장에선 인력이 없어 서비스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병목 현상이 일어난다. 서비스의 질을 고려한다면 전달 기관을 모으고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상목 경기복지재단 이사장은 “고용과 복지의 병행 등 각종 부처와 기관, 민간단체로 흩어진 복지 자원과 전달체계를 통합해야 예산 절감과 복지 만족도 향상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한국형 복지모델 이렇게 만들자… 유럽 탐방 전문가 10인의 조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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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장) 사회서비스 공공성 확보 무엇보다 중요
유럽을 보니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같은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였다. 경쟁이 서비스의 질을 높일 것으로 막연히 기대하는 것은 복지가 오히려 차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해 보인다.
○ 서상목(경기복지재단 이사장·전 보건사회부 장관) 복지-고용부서 통합 정부조직 개편부터
고용연계형복지(workfare) 실현을 위해 복지부서와 고용부서를 통합 운영하는 것이 새로운 흐름이었다. 정부조직 개편이 선행돼야 할 문제다. 경기도 내에서라도 일자리센터와 무한돌봄센터 간의 협조를 통해 복지와 고용을 통합하는 시도를 하려 한다.
○ 양옥경(한국사회복지학회장·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통합-조정의 가족 지원정책 실행 나서야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가진 한국에서 아직까지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없다는 것이 새삼 큰 문제로 다가왔다. 다양한 유형의 가족에게 복지 책임의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통합·조정의 가족지원정책을 실행한다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볼 것이다.
○ 임무영(서울시 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강서노인종합복지관장) 사회복지사 육성해야 지속적 복지 가능
유럽국가를 돌며 질적 양적으로 빈곤한 우리 사회복지계의 현실이 떠올랐다. 단발적인 복지가 아니라 지속적인 복지가 되려면 사회복지의 ‘질’을 고민할 때가 됐다. 사회복지사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육성 방안이 필요하다.
○ 조성희(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가난 대물림 막을 가족지원정책 찾아야
한국의 저출산·고령화를 해결할 실마리가 있었다. 개인이 아닌 가족을 지원하는 정책, 일-가정 양립을 돕는 정책, 가난의 대물림을 막는 정책 등 ‘전체로서의 가족(family as a whole)’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우리의 가족문화와 결합해야 한다.
○ 박을종(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기부-나눔문화 활성화로 양극화 보완을
선진 복지국가인 독일에서조차 복지서비스의 시장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아직 보편적 복지가 자리 잡지 못한 한국에서 섣부른 복지서비스 시장화를 추구하면 양극화를 심화할 수 있다. 기부와 나눔 문화가 활성화돼 공공서비스의 공백을 메워가야 한다.
○ 신상진(한나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 이념적 논쟁보다 구체적 전략 마련해야
한국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은 원칙적으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지만 실행 전략으로선 자산과 근로능력에 따른 선별적 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이념적인 논쟁보다 구체적인 전략에 머리를 맞댈 때다.
○ 이준영(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유럽서 배울 건 복지정책 아닌 복지철학
유럽에서 배울 것은 복지정책이 아니라 복지철학이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려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기본 욕구를 충족시켰더니 출산율도 올라갔다. 한국도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비정규직 차별 개선을 선행해야 한다.
○ 조성철(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 민관 사회복지서비스 인력 확충 힘써야
한국은 유럽과 비교했을 때 민관 사회복지서비스 인력이 부족하다. 사회복지사는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복지사가 중재자 역할을 잘 해낸다면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 홍선미(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공공 무한책임-민간 자발적 참여 조화를
유럽국가들은 미래사회의 위험에 대비해 복지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기 위한 동력으로 삼고 있었다. 공공의 무한 책임과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조화를 이룬 복지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돕기보다 도움 받기가 목적인 전달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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