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고 및 외국어고 입시에 자기주도 학습전형이 도입되면서 고교 입시담당 교사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학교 측은 입시담당 교사를 대상으로 꾸준히 연수 및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대비책을 고심 중이다. 사진은 서울대 교육연수원이 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입학사정관 양성과정 수업 장면.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봉사활동시간이 많다고, 희망 진로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무조건 잠재력이 높은 학생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잖습니까. 우수한 봉사활동, 우수한 독서이력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율고)의 A 교사는 요즘 면접에서 학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고민이다. 이런 고민은 고교 입시 개편안이 발표된 올해 3월부터 시작됐다. 학교 입학관리팀에 배정된 A 교사는 이후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보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평가요소와 방법에 대한 회의에 참가했다. 여름방학엔 2회에 걸쳐 2박 3일간 특별연수를 했다.
하지만 고교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도 평가요소와 방법 외에 뚜렷한 채점기준이 세워지지 않았다. 그는 “얼마 전 실시한 모의 면접 때는 한 학생의 ‘스펙’을 두고 면접관 3명의 점수가 크게 50점까지 차이가 났다”면서 “학생 선발 이후 평가기준에 대한 논란이 생길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자율고 및 외국어고 입시가 다가오면서 학생과 학부모뿐 아니라 교사들까지 혼란을 겪고 있다. 문제의 핵심원인은 이른바 ‘자기주도 학습전형’의 도입. 자기주도 학습전형에선 영어인증시험 점수, 경시대회 수상실적 등을 반영하지 않는 대신, △중학교 2, 3학년 내신 성적 △학습계획서 △교장 혹은 담임교사, 교과목 교사 추천서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즉 ‘토익 900점’처럼 정량적으로 평가할 요소가 대폭 줄고 ‘봉사활동 내용’처럼 정성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요소가 크게 늘어난 셈이다.
○“도대체 뭘 보고 우수한 학생이라 할 수 있나…”
자율고 및 외고 입시담당 교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수많은 내신 1등급 가운데 뭘 보고 학생을 뽑아야 하나’이다. 지원자들 간 내신 성적 차이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봉사활동이나 독서활동은 시간 수, 독서량만으로 평가하긴 무리가 있으며, 창의적 재량활동은 내용이 다양해 일관된 기준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게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외고 입시담당 교사는 “예를 들어 저소득층 학생지도 봉사활동을 96시간 한 A 학생과 쓰레기 줍기를 260시간을 한 B 학생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A 학생의 봉사활동 내용이 B 학생보다 무조건 우수하다고 할 수 없으며, 반대로 A 학생보다 2배 넘는 시간을 봉사활동한 B 학생이 더 나은 학생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예전부터 정기적으로 진행되던 서울지역 외고 6개교 교감 교무부장 회의에서도 1년 전부터 자기주도 학습전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이 회의에 참가하는 외고의 한 교감은 “자기주도 학습전형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지만 아직 확실히 발표할 만한 결론이 나오진 않은 상황”이라며 “특히 각종 면접 자료의 진위를 가리는 시스템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 문제도 부각된다. 자율고와 외고 측은 면접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면접관의 수를 많게는 6명까지 늘리고 면접시간을 한 학생에 40∼60분 할애한다는 학교도 있다. 또 한 면접관이 특정 학생에게 너무 높은 평가점수를 줄 경우 모든 면접관의 평가를 재검토하는 ‘재심 제도’를 도입한 학교도 적잖다.
한편 이런 제도들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교사들도 있다. 서울 한 외고의 K 교사는 “만약 학습계획서에서 중3 수준의 어휘가 아닌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을 발견해도 실제로 0점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또 경시대회 참가여부만 작성해도 감점을 해야 할지, 수상실적을 밝혀야 감점을 할지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한 한국외국어대부속용인외고의 강경래 입학관리부장은 “사교육을 억제한다는 자기주도 학습전형의 기본 취지에는 크게 공감한다”면서도 “다소 급히 시행된 탓에 고교가 준비할 기간이 짧아 혼란이 있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제약만 있는 추천서 작성은 어떻게…”
자율고 및 외고 입시에 자기주도 학습전형이 도입되면서 혼란과 어려움을 겪는 건 중3 지도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추천서를 어떻게 작성하는가’이다. 자기주도 학습전형에서 교사추천서가 지원자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기 때문.
서울 강남구의 한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K 교사(여)는 자율고에 지원하려는 반 학생 두 명의 추천서를 1주일째 작성 중이다. 야근을 하지 않는 날엔 집에서 작업을 했다. 지원 학생을 따로 불러 3회 이상 개별면담을 했다. 학습계획서와 마찬가지로 경시대회 수상실적 등을 기입하는 게 금지돼 있어 학생을 더욱 면밀히 파악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K 교사는 “올해부턴 잘못된 내용을 기입할 경우 ‘블랙리스트’에 올라 모든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조심스럽게 추천서를 작성한다”면서 “하지만 금지사항만 명확하지 아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 크게 애를 먹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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