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945년 마셜제도 강제노역 진상 첫 확인
‘식인사건 저항한 조선인들 집단 학살’ 사실로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남태평양 마셜 제도 내 밀리환초(環礁·산호초 섬이 띠 모양으로 연결된 곳)에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식인(食人)사건’에 저항하다 무차별 학살된 사실이 정부 조사로 처음 확인됐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지원위)는 2006년부터 이 사건에 관련된 생존자 증언과 일본 정부 문서 등을 조사해 최근 ‘밀리환초 조선인 저항사건과 일본군의 탄압 진상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5일 밝혔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밀리환초의 외부 보급이 끊어진 것은 1944년 6월 경. 당시 남태평양 전황이 이미 미군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밀리환초에는 1942년 전쟁 전 거주자 500여 명의 10배가 넘는 5300여 명의 일본군 소속 일본인과 조선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외부 보급 없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본의 마지막 보급선은 1943년 끊겼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1945년 2월 일본군이 숙소로 ‘고래고기’를 갖다 줘 조선인들이 이를 먹었는데 며칠 뒤 근처 무인도에서 살점이 도려져 잔혹하게 살해된 조선인 시체가 발견됐다. 주변 사람이 계속 없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조선인들은 일본군이 사람을 죽인 다음 인육을 먹었고, 심지어 조선인에게도 이를 몰래 먹인 사실을 눈치 챘다.
이에 밀리환초 내 첼퐁 섬에 주둔하던 조선인 120여 명은 감시인으로 파견된 일본인 11명 중 7명을 숲 속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미군에 투항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튿날 저항사건이 발각되면서 인근 루코노르 섬에 있던 일본군들이 기관총으로 조선인 100여 명을 학살했다. 이때 일부 조선인은 야자나무 위로 피신해 목숨을 건졌는데 이들의 증언으로 이 사건은 역사 속으로 묻히지 않고 공개될 수 있었다. 당시 살아남은 사람은 부상자 2명을 포함해 15명에 불과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