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공식 서명]국내에 미칠 영향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7일 03시 00분


25만명 고용 창출-GDP 5.6% 증가 기대

브뤼셀 EU 본부서 서명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유럽연합(EU)의 스테번 파나케러 벨기에(EU 의장국) 외교장관이 6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 EU 이사회 본부에서 한-EU FTA에 정식 서명하고 있다. 브뤼셀=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브뤼셀 EU 본부서 서명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유럽연합(EU)의 스테번 파나케러 벨기에(EU 의장국) 외교장관이 6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 EU 이사회 본부에서 한-EU FTA에 정식 서명하고 있다. 브뤼셀=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으로 EU라는 세계 최대 시장의 관세장벽이 사실상 없어지면서 국내 산업계의 지형과 소비자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유럽산 고급 자동차와 와인 가격 하락으로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 폭은 넓어졌지만 관련 업계의 생존 경쟁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구 5억 명의 EU 시장이 열린 만큼 한국산 가전제품은 높아진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EU 수출에 박차를 가하겠지만 의약품이나 화장품처럼 유럽산 제품이 기술 우위를 가진 분야에서는 국내 시장 잠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세계 최대 시장 문 열려

한-EU FTA가 한국 사회에 가져올 영향이 막대한 이유는 EU의 경제규모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EU의 국내총생산(GDP)은 16조4000억 달러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GDP의 30% 수준으로 미국(14조3000억 달러)보다는 2조1000억 달러가 많고 한국과 비교하면 20배 수준이다. 한국과 EU의 교역액은 중국과의 교역액 1409억 달러(약 158조9352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지난해 EU와의 교역액은 788억 달러(약 88조8864억 원)로 전체 교역액 6866억 달러(약 774조4848억 원)의 11.5%를 차지했다.

정부는 무엇보다 수출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3.5%)보다 높은 EU의 관세율(5.6%)이 사라지면 그만큼의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국 업체들이 대(對)EU 수출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재 한국의 수출 주력품인 자동차는 관세율이 10%, TV는 14%, 섬유와 신발의 관세율은 최고 12∼17%에 이른다. 특히 한국보다 먼저 EU와 FTA 협상을 추진한 일본에 앞서 EU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은 비관세 무역장벽이 높아 EU와 FTA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여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원장은 “수출 증대 효과로 한국의 실질 GDP는 2020년까지 최대 5.6% 늘어나고 25만 명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며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EU와 FTA를 체결한 ‘선점 효과’까지 감안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 한국 산업계 영향은?

한-EU FTA를 가장 반기는 곳은 자동차업계다. 자동차업계는 “자동차산업만 놓고 볼 때 연간 약 2000만 대를 생산하고 승용차가 매년 1500만 대가량 팔리는 EU와의 FTA가 미칠 파장은 미국과의 FTA를 능가할 것”이라는 분석 아래 관세 인하 이익을 시장 점유율 확대의 기회로 삼을 태세다.

한국의 수출 주력 차급인 1.5L 초과 승용차에 대해 EU 측이 비교적 조기인 3∼5년 내에 현재 10%인 관세를 철폐하기로 하면서 앞으로 15년간 EU에 대한 자동차 수출은 연평균 14억1000만 달러 정도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아반떼급 차량 10만 대 정도를 더 파는 셈이다. 현대·기아자동차처럼 동유럽 현지 공장에서 생산을 하는 경우에도 국내에서 조달하는 부품에 3∼4.5%가 붙는 관세가 없어지므로 생산비 절감 효과가 생긴다.

반면 의약품과 화장품, 정밀화학, 정밀기계 분야는 월등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유럽 제품의 공세로 국내 시장의 잠식이 예상된다.

하지만 농수산물 분야의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분유, 치즈 등 품질 경쟁력이 뛰어난 일부 EU 가공농산품 수입은 늘겠지만 다른 농수산물은 미국이나 중국산과 비교했을 때 수입 물량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 한-EU FTA에 따른 관세 철폐 대상에서 쌀은 제외됐고 고추, 마늘, 양파, 대두, 보리, 감자, 인삼, 제주산 감귤, 흑설탕 등 9개 민감품목도 현행 관세가 그대로 유지된다.

○ 유럽산 농축산물 가격 크게 낮아질 듯

한-EU FTA는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25%의 관세가 매겨지고 있는 EU산 돼지고기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관세가 철폐된다. 이 경우 국내산 대비 86.6%인 EU산 돼지고기 가격이 72.1%로 낮아지게 된다.

와인과 위스키 가격도 내린다. 15%의 관세가 즉시 철폐되는 유럽산 와인은 13% 정도의 가격 인하 요인이 생긴다. 관세가 20%에 이르는 스카치위스키도 3년에 걸쳐 가격이 매년 내리게 된다. 관세율이 36%에 이르는 EU산 치즈도 가격 인하 폭이 클 것으로 보인다.

또 국내 자동차시장에서는 유럽산 자동차의 소비자가격이 7.4% 정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3390만 원인 폴크스바겐 ‘골프 2.0 TDI’는 약 250만 원, 6790만 원인 BMW ‘528’이나 6970만 원인 메르세데스벤츠 ‘E300’은 500만 원 정도 싸진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수입자동차 업계는 딜러의 마진폭과 국내 물류비용 등을 감안하면 실제 소비자 가격인하폭은 5%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명품 의류와 화장품, 구두, 핸드백의 가격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관세 철폐에 따른 단순 가격 인하 예상 폭은 의류가 8∼13%, 구두는 13%, 화장품과 핸드백은 8% 정도다.

이종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EU 제품은 의약품에서부터 명품 의류까지 한국 시장 저변에 넓게 분포돼 있는 데다 관세율도 높았던 만큼 한-EU FTA가 한국 가계의 소비와 지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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