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너 갔다온 해외파… 토종박사들이 물먹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9일 03시 00분


서울대 올 신임교수 88명중 34명이 국내파… 해마다 꾸준히 늘어

올해 2학기 서울대 지리학과에 임용된 구양미 교수(32·여)는 순수 국내파다. 구 교수는 서울대 지리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3년 만에 조교수로 임용됐다. 내로라하는 외국 명문대 출신 박사들도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나이도 가장 어렸던 ‘토종 박사’가 낙점을 받았다.

올해 1, 2학기 서울대에는 88명의 신임 교수가 교단에 섰다. 이들 중 국내 박사는 34명(38%). 2006년에는 신규 임용된 65명 중 27명, 2009년에는 116명 중 31명이 토종 박사 출신이었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외국인 교수 채용 지원 사업’을 펴면서 외국인 교수 임용이 크게 늘어 상대적으로 국내 박사 비율이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절대적인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의대, 치대 등에만 한정돼 있던 국내 박사의 교수 채용이 사회대, 공대, 자연대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 “외국 유학, 굳이 갈 필요 없다”

종전에는 교수가 되려면 반드시 외국 유학을 가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올해 1학기 조교수로 임용된 미학과 신혜경 교수는 “졸업할 때 많은 교수님들이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 더 빠르고 임용 때도 유리하다며 유학을 권유했다”며 “당시 여러 사정 때문에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지만 대중문화 등의 분야에서 독특한 연구를 해 온 점이 인정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올 정도로 국내 일부 대학원은 수준이 높다. 국내 박사 출신 교수들은 “지금은 국내 박사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고, 학위를 국내 국외 어디서 땄느냐보다 개인의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2학기 임용된 전기컴퓨터공학부 정윤찬 교수는 “세계적인 학자들도 서울대 KAIST 등을 잘 알고, 한국 대학 박사들이 우수하다는 말이 돌 정도로 국내 대학원 수준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서울대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을 위해 영국 사우샘프턴대에 갔다가 능력을 인정받아 교수로 임용됐다.

○ 인터넷, 국제학회 통해 장벽 허물어져

신 교수는 “과거에는 논문을 쓰려면 외국 대학 도서관에 가거나 현지에서 책을 사서 봐야 했지만 지금은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연구자료를 구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2학기 임용된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손영환 교수는 “토질 지반 토양 정보를 전공했는데 국내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에서 토양 정보에 대한 자료를 더 쉽게 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제학회의 임원을 한국인이 맡고 수준 높은 국제학술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게 된 것도 힘이 됐다. 최근 화학생물공학부 현택환 중견석좌교수는 노벨화학상 수상 관련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화학 분야 최고 학술지인 미국화학회지 부편집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 “아직도 부족해”… 국내박사 인식·제도 개선 필요

그러나 아직도 외국 박사를 선호하는 우리 대학들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 교수는 “자기 대학에서 엄청난 박사를 배출하면서도 교수 채용자는 대부분 외국 박사들”이라며 “능력보다 외국 박사라는 이유만으로 우선권을 준다면 누가 국내에서 연구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결국 국내 박사과정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글로벌 닥터 프로그램’을 내년에 도입해 국내 대학원 학생에게 연구비와 인건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대상도 현재 시행 중인 미래기초과학 핵심리더 양성사업이 지원하는 이공계열뿐만 아니라 전 학문 영역으로 넓힐 계획이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