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기술철학’ 세계적 석학 앤드루 핀버그 加사이먼프레이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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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1일 03시 00분


“광우병 같은 정치-과학 섞인 논쟁은 사려깊게 판단을”

앤드루 핀버그 교수가 7일 오전 대전 KAIST 과학저널리즘대학원 진달용 교수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는 “다른 요인보다도 창의성이 그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여야 과학기술이 번창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앤드루 핀버그 교수가 7일 오전 대전 KAIST 과학저널리즘대학원 진달용 교수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는 “다른 요인보다도 창의성이 그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여야 과학기술이 번창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광우병 논란이나 천안함 폭침사건 등 과학기술적 사안에 대한 진실의 발견과 판단은 과학자들의 영역입니다. 이런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시민들의 정치 냉소주의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언론학부 앤드루 핀버그 교수가 7, 8일 대전 KAIST에서 ‘과학기술의 10가지 모순’ 등을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KAIST 과학저널리즘대학원과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의 ‘해외석학초청강연’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처음 온 핀버그 교수는 기술철학(Philosophy of Technology)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기술철학과 관련한 국제 세미나에서는 그의 이론에 대한 별도의 분과회의가 열린다. ‘변화하는 기술(Transforming Technology)’ 등 그의 저서 12권은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세계 100개국에서 대학 교재로 쓰인다. 핀버그 교수는 ‘과학 기술의 발전은 사회, 문화, 정치적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좀 더 종합적인 시각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도구화 이론(instrumentalization theory)’으로 국제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기술철학은 좀 생소하게 들리는데….

“기술의 본질을 밝히고 기술 발전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현대인은 과거와는 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e메일을 확인하고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또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과학기술을 개발하거나 이를 활용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과학기술 권력(technological power)’이 생겨났다. 이 권력은 우리를 편리하게 하기도 하고 환경오염을 유발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기술철학이 중요한 분야로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후 변화 문제 해결을 놓고 선진국과 후진국 간 시각이 다른데….

“기후 변화는 현재 진행되는 현상인 만큼 공감대를 찾아야 한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도 기후변화협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원인을 제공한 선진국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소셜미디어 사용이 엄청난 속도로 늘고 있다.

“소셜미디어는 e메일, 컴퓨터회의, 웹포럼 같은 컴퓨터 네트워킹이 진화한 형태다. 페이스북 같은 사이트는 매우 빠르고 무섭게 커뮤니케이션을 증가시켰다. 그동안에는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으나 이제는 쌍뱡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져 자신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긍정적, 부정적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소셜미디어는 교육과 우정을 증진시켰지만 범죄도 용이하게 한다. 인간의 접촉 범위를 국제적으로 넓혔지만 더 풍요로운 커뮤니케이션 방법인 ‘인간 대 인간’의 접촉은 감소시켰다. 피상적인 만남이 많아졌다. 깊이 없고 얄팍한 상호관계가 형성됐다. 잘못된 정보와 거짓말이 너무 빨리 확산되는 점은 문제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고 싶다. 캐나다에서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수십만 명의 의견 개진이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과학기술 사안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말 같다.

“과학기술 문제에 대한 시민참여는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다. 침묵하는 것보다는 시민이 개입해 항의하고 찬성하는 것은 좋은 흐름이다. 시민참여가 결과적으로 사회발전과 기술발전에 도움이 된다. 옛 소련은 환경 문제에 대한 논의를 불법으로 규제해 환경오염이 가장 심한 나라가 됐다. 시민들은 전문지식이 없어 판단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지만 문제 제기 수준이면 참여가 바람직하다.”

―한국에서는 과학기술적 사안의 정치 이슈가 최근 많이 발생하고 있다. 광우병 논란, 4대강 살리기 사업, 천안함 사건 등이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의 역할은 미약했고 정치적 논쟁만 무성했던 것 같다.

“과학적 사안의 정치적 이슈화에 대처하려면 정치인들은 과학기술을 일상적으로 논의하고 대중은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수준과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시민들은 정치인들에 의해 이용당하지 않도록 사려 깊게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학습과 교육을 통해 점차적으로 시스템과 정치인, 대중의 태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게임 중독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있나.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은 청소년들이 자신들을 답답하게 에워싼 사회에서 나름의 공간을 찾는 일과 관련이 있다. 인간은 인터넷이 나타나기 전에도 시간을 낭비해 왔다. TV를 보거나 술집 또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전자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한 독서시간의 감소다. 어떻게 독서의 기술을 북돋우고 발전시킬 것인지 연구해야 한다.”

―강연에서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정책의 우선순위 문제가 때로는 국가에 재난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하면서 중국의 예를 들었는데….

“중국은 주요 교통수단으로 대중교통보다 개인 자동차를 택했다. 자동차산업의 진흥을 통해 경제 발전과 현대화를 촉진하려는 정책이다. 하지만 또 다른 배경은 광고나 미디어를 통해 현대의 서구 이미지를 모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국인에게 자동차 소유는 힘과 현대화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승용차는 대기오염과 교통 혼잡, 대량 에너지 소비 문제를 가져온다. 상파울루와 멕시코시티 같은 도시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중국은 앞으로 많은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한국은 문자를 창제한 왕(세종대왕)이 있다고 알고 있다. 최근에 과학학술 저널에서 복제와 관련한 스캔들(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을 읽은 적이 있다. 한 과학자의 부정직뿐만 아니라 그를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한 사회에도 문제는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위대한 혁명은 매우 드물게 한 개인의 상상력에 의해 일어나지만 대부분은 여러 연구자들이 벽돌을 하나씩 보태는 식으로 이뤄진다. 과학자를 스타보다는 존경할 만한 사회 일원으로 대우해야 한다. 국가적인 자존심과 개인적인 풍요 같은 외적 동기와 관계없이 창의성 그 자체가 존중받아야 과학기술이 번창한다.”

핀버그 교수는 한글날인 9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과 한글박물관 등을 관람한 뒤 “언어는 인간이 개발한 가장 중요한 과학기술의 결정체 중 하나”라며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중요한 업적”이라고 말했다.

―‘빨리빨리’문화가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평가도 있다.

“빨리빨리 문화는 처음 들었다. 하지만 기술을 빨리 받아들이고 빨리 발전시키려는 것은 야심 찬 생각으로 발전의 동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학과 기술은 인류를 위협할 것인가 아니면 구할 것인가.

“과학기술의 발전은 제멋대로가 아니라 사회에 의해 인도된다. 과학기술이 사회의 선택을 반영하며 가치중립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백신 접종과 근대농업은 우리의 건강을 지키고 기아에서 해방시켰지만 핵과 기후변화는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필요한 이유이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앤드루 핀버그 교수::

-1943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출생
-1965년 미 존스홉킨스대 철학과 졸업
-1967년 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에서 철학 석사학위 취득
-1968년 미 듀크대 조교수
-1969년 미 샌디에이고스테이트대 교수
-1973년 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에서 철학 박사학위 취득
-2003년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석좌교수
-일본 도쿄대, 프랑스 파리대, 노르웨이 오슬로대 방문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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