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절반 이상 교내 스포츠클럽 가입’ 추진 교육현장
“운동 못해 기죽을까봐…” 체육 사교육업체에 전화 급증
대부분 학교 동아리-시설 태부족… 선발시험 봐야 할 판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학교체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많은 학부모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체육활동이 입시에 반영된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2015년까지 전체 초등학생의 절반 이상이 교내 체육동아리인 학교스포츠클럽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학교체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과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운동부족으로 저하된 청소년의 체력을 향상시키고 입시 위주 교육에 묻혔던 체육을 활성화시킨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스포츠클럽 활동내용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하는 것.
결국 초등학생인 아이의 학교스포츠클럽 활동내용이 고교와 대학 진학 시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반영될 전망인 만큼 어떤 스포츠클럽에 아이를 보내는 게 효과적일지, 심지어는 학교 체육을 가르치는 학원에 아이를 보내야하는 건 아닌지를 고민하는 학부모가 늘어난 것이다. 입학사정관은 체육활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할지를 걱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 제한된 학교공간에서 학교체육 활성화 방안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근원적 회의까지 있다.
학교체육 활성화 방안,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 아이, 어떤 활동을 시켜야 할까. 상급학교의 입학사정관들은 과연 무엇을 평가할까.》 ○ 학부모 한숨… “지갑에서 돈 새는 소리 들려요!”
학교체육을 가르치는 사설업체에 최근 주말체육수업에 관한 문의가 크게 늘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주말체육 특강 공고. 초등 4학년 아들을 둔 주부 조모 씨(38·경기 수원시)는 지난주 아들을 사설업체가 운영하는 유소년 축구클럽에 등록시켰다. 최근 ‘스포츠클럽 활동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결심을 굳힌 것. 학교에도 축구클럽이 있지만 평일에만 수업이 있어 시간이 맞지 않아 일요일마다 2시간씩 경기하는 클럽에 들어갔다. 조 씨는 “회비는 월 5만원이지만 간식이나 운동복 구입조로 추가되는 돈이 부담스럽다”면서 “일요일엔 쉴 수 있었는데 아이와 함께 왕복 4시간을 움직이려니 힘들다”고 토로했다.
방과후 수업으로 진행되는 학교 스포츠클럽은 일반적으로 월 4만∼5만 원에서 학기별로 17만∼20만 원 선이다. 앞으로 학생부에 학교 스포츠클럽 활동내용을 기록하게 된다면 클럽에 지원자가 몰릴 뿐 아니라 이를 보충하기 위한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리라는 예상이 많다.
초등 5학년 딸을 둔 주부 박모 씨(40·서울 강남구 대치동)는 요즘 주말체육과외수업을 알아보고 있다. 줄넘기 2단 뛰기, 구르기, 농구 슛 연습 등 학교에서 하는 모든 체육활동을 미리 연습한다. 회비는 월 10만 원. 특정대학 출신 강사는 월 12만 원 선이다. 박 씨는 “축구, 야구, 농구, 수영 클럽을 생각해봐라. 어디나 공개수업이다. 내 아이가 야구를 하는데 기술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면 기가 죽을까봐 따로 시킬 수밖에 없다”면서 “앞으로 체육과외가 더 심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2∼3년간 침체 분위기였던 사설업체의 주말체육수업에 관한 문의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 업계관계자들의 말이다.
‘사커맘’의 등장도 불가피하다. 사커맘은 스포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자녀의 경기를 따라다니면서 뒷바라지에 열성인 엄마를 지칭한다. 앞으로 일반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스포츠클럽 리그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인 만큼 대회에 참가하려는 자녀를 지원해야 하는 엄마도 바빠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 학생건강안전과 안희숙 교육연구사는 “시도 교육청 예산담당관과의 회의를 통해 스포츠클럽 운영비를 책정해 학교에 지원할 계획이며 학교 스포츠클럽 활동에 대해서는 학부모의 비용부담이 줄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 “대회는 수상실적보다는 동기부여나 경험에 의미를 두도록 권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아이스하키 vs 농구, 대학 입학사정관은 같은 점수 줄까?
학생부에 기록된 체육활동상황이 입학사정관제에 자료로 반영된다는 점이 학부모들은 부담스럽다. 남들도 다하는 종목보다는 아이스하키, 스케이트, 라크로스와 같은 특별한 스포츠를 하는 것이 아무래도 눈에 띄고 입시에도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같은 종목을 꾸준히 하는 것이 입시에 더 유리할지, 다양한 종목을 두루 배우는 것이 더 유리할지 궁금해하는 학부모도 있다.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얼마나 오래, 어떤 종목의 운동을 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지원자가 체육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예술, 체육 전반의 소양이 있는 학생인지를 평가한다는 것.
임진택 전국입학사정관협의회 회장은 지난해 입시에서 인상적이었던 한 여고생을 사례로 들었다. 남녀공학에 다녔던 A 양은 농구를 좋아하는 여자친구 몇 명과 모여 농구 동아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경기의 규칙도 잘 몰랐던 멤버들은 지역 체전을 목표로 꾸준히 연습했고 결국 여자 고등부 우승을 차지했다. 임 회장은 “입학사정관은 활동의 결과나 실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체육활동을 통해 얻은 성취감, 협동심, 리더십, 팀워크, 창의성 등 활동 안의 내용을 평가한다”면서 “특정 종목이나 대회성과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회를 활성화시키는 것도 스펙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학생으로 하여금 공부 외의 활동에 목표의식을 가지고 도전하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교과부는 설명한다. 안희숙 연구사는 “학생부에는 ○○스포츠클럽에서 ○시간 활동했다는 내용만 기록하게 될 것이고 체육성적도 현재와 같이 우수, 보통, 미흡으로만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인기 스포츠클럽 경쟁 치열… 학생 등록률 50% 가능할까?
학교별, 종목별로 학생과 학부모가 스포츠활동에 대해 갖는 관심과 접근성, 학교의 지원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경기 수원시의 A 공립초교에는 현재 축구와 야구 단 두 종목의 클럽이 방과후 수업의 형태로 개설되어 있지만 참여율은 낮다. 반면 서울의 B 사립초교에는 9개의 스포츠클럽이 개설되어 있는데, 농구 야구 축구부터 인라인스케이트 무용 골프 등 종목도 다양하다. 전교생의 30% 정도가 클럽에 등록했다. 인기클럽에는 20명을 뽑는데 50명의 학생이 몰려 추첨으로 선발하기도 했다.
교과부는 학생 참여를 독려하고 지원을 확대해 초등생의 절반을 스포츠클럽에 참여토록 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체육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립초교만 하더라도 운동장, 체육관, 일부 교실까지 동원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장소와 강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한 사립초교의 체육전담교사는 “전체학생의 50%가 클럽에서 스포츠활동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입시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더욱 과열돼 인기 클럽은 학생을 선발하려고 시험을 봐야 할지도 모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