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1500억 빌딩 범죄수익” 몰수보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2일 03시 00분


‘인형재벌’ 1000억 비자금 조성 해외 빼돌려 사상최고액… 유죄판결땐 공매후 국고 환수

범죄수익으로 간주돼 몰수보전 결정이 내려진 시가 1500억 원대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
팍스타워 빌딩.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범죄수익으로 간주돼 몰수보전 결정이 내려진 시가 1500억 원대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 팍스타워 빌딩.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000억여 원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기업인이 소유한 서울 강남 노른자위 땅의 초대형 빌딩에 대해 법원이 몰수보전 결정을 내렸다. 2008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지상 15층, 지하 4층 규모로 지어진 이 빌딩은 시가로 1500억 원. 범죄수익으로 간주돼 몰수대상이 되는 몰수보전액으로는 사상 최고액이다. 6월 대검찰청이 전국 17개 검찰청에 범죄수익환수반을 설치하는 등 “범죄로 얻은 수익을 반드시 거둬들이겠다”고 강조한 이후 검찰이 거둔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단독 권순건 판사는 최근 거액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인형제조업체 애드벤트엔터프라이즈사 대표 박모 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서울 강남구 논현동 팍스타워 빌딩(사진)에 대해 ‘기소 전 몰수보전 결정’을 내렸다고 11일 밝혔다. ‘기소 전 몰수보전’이란 범죄혐의자를 기소하기 전에 범죄수익이나 여기서 나온 재산의 처분을 미리 금지해놓고 나중에 유죄가 확정되면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박 씨의 유죄가 확정되면 이 빌딩은 공매에 넘겨지고 이 가운데 박 씨가 해외로 빼돌린 범죄수익은 모두 국고에 환수된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이성윤)는 해외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이용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박 씨를 수사하던 중 비자금의 상당 부분이 국내 페이퍼컴퍼니인 B사로 흘러들어 팍스타워 빌딩 건축에 쓰인 정황을 파악하고 지난주 법원에 몰수보전을 청구했다. 법원도 B사가 소유한 이 빌딩이 실질적으로 박 씨의 것이라고 인정하고 몰수보전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박 씨가 2001∼2009년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인형의 검수료와 중개수수료를 지급하는 명목으로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와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에 1000억여 원을 넘겨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씨는 이 과정에서 소득을 신고하지 않아 400억여 원의 종합소득세를 내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박 씨는 이렇게 조성한 비자금을 스위스은행의 차명계좌에 쌓아두거나 해외 골프장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고 일부 자금은 한국으로 들여와 팍스타워 빌딩을 세우는 데 쓴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최근 박 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되자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박 씨는 1990년대 초 미국 인형제조업계 대형 회사인 T사의 의뢰로 ‘비니 베이비(Beanie Baby)’라는 인형을 만들면서 ‘인형 재벌’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로 채워져 포근한 감촉을 주는 이 인형의 판매 성공으로 T사 창업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됐고 애드벤트 또한 매년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알짜 회사가 됐다. 박 씨는 국내 공장에서 올리는 수입에 대한 세금은 성실하게 납부해 2008년 3월 서울 양천세무서에서 모범납세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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