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 관련 비영리단체인 미국 카우프만재단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최근 30여 년간 순일자리 증가(총 일자리 창출―총 일자리 소멸)를 주도한 것은 창립 5년 이내 신생 기업으로 나타났다. 5년 이내 신생 기업을 제외하면 1980년대 이후 순 일자리가 증가한 해는 1984년, 1995년, 2000년 등 단 세 차례뿐이었다. 창업 활동이 없었다면 수천만 명의 실업자가 길거리에 내몰렸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조지프 슘페터는 새로운 제품과 프로세스를 개발하는 도전형 기업(entrepreneurial venture)이 자본주의 경제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엔진이라고 주장했다.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이 투자를 활성화하고 고용창출을 늘려 성장을 이끈다는 말이다.
○ 기업가정신 강화에 팔 걷은 선진국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기업가정신을 국가경쟁력 강화의 원동력으로 보고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이번 기업가정신 국제경쟁력 순위 분석 결과 10위권 내 국가 중 2000년 대비 순위가 상승한 덴마크(7위→5위)와 스웨덴(3위→2위)이 대표적이다.
덴마크는 2010년까지 ‘유럽의 기업가적 엘리트 국가(Europe's entrepreneurial elite)’로 도약한다는 게 정부의 정책 목표다. 이를 위해 ‘기업가정신 지수(Entrepreneurship Index)’를 국가 차원에서 개발해 2004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있다. 기업가정신이 발휘될 수 있는 조건을 크게 △시장 접근성 △자본 공급 △기업가적 문화 △인센티브 △기술 공급 등 5가지로 나눠 국제 비교를 한 뒤 기업가정신 제고를 위해 정부가 개선해야 할 주된 문제와 핵심 영역을 찾아내고 있다.
스웨덴에선 1999년 8월 개원한 스톡홀름 기업가정신 대학(SSES·Stockholm School of Entrepreneurship)이 주목받고 있다. ‘스테판 페르손 재단’의 기부로 출범한 SSES는 종합대학인 스톡홀름대와 스톡홀름경제대, 왕립기술대, 카롤린스카대(의학), 콘스트파크(예술) 등 스웨덴 최고 명문 대학들이 멤버로 참여해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의사, 예술가, 기술자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창업 아이디어의 사업화, 기업 운영 등을 함께 배우고 있다. 학부 및 석·박사 과정의 정규 학위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공개강좌와 포럼, 워크숍 등도 개최한다.
에인절 투자, 벤처 캐피털 등 창업 자금 조달 측면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는 미국은 2000년대 초반 ‘개념검증센터(proof-of-concept)’를 도입하는 등 창업 자금 지원 시스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념검증센터란 대학 연구 결과의 상업화를 가속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상업화 가능성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종잣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참신성이 지나쳐 리스크가 너무 큰 탓에 벤처 캐피털조차 투자하기를 꺼리는 대학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돈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대표적 개념검증센터인 매사추세츠공대(MIT) 데시판데 센터의 경우 MIT 랩 소속 교수들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프로젝트당 5만∼25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2002년 출범 이후 지금까지 총 80개 이상의 프로젝트에 1000만 달러를 지원했고, 이를 통해 총 22개 회사가 창업에 성공했다.
○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기업가정신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기업가정신을 더욱 불붙이는 계기가 됐다. 미국 성인 20∼64세의 월별 창업활동을 측정하는 ‘카우프만 기업가 활동지수’는 2005년 0.29%(월평균 46만4000개 창업)에서 2008년 0.32%(53만 개), 2009년 0.34%(55만8000개) 등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단순히 고용환경이 나빠져 창업으로 쏠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빌 올렛 MIT 기업가정신센터 총괄 디렉터는 “MBA 학생들이 컨설팅 회사 등 가장 선호하는 직장에 일자리를 잡고도 창업으로 방향을 트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MIT 경영대학원의 올해 졸업생(388명) 중 졸업과 동시에 창업에 나선 이들은 전체의 10%를 넘는 40명에 달한다. 이 대학에서 ‘기업가정신 및 혁신 프로그램(E&I·Entrepreneurship and Innovation)’을 총괄하는 에드워드 로버츠 교수는 “2007년 이전만 해도 취업 대신 창업을 택하는 졸업생은 매년 6∼8명에 불과했다”며 “2008년과 2009년에 20∼25명으로 늘어나더니 올해 두 배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 교육프로그램 통해 기업가 마인드 확산
유럽연합(EU)은 2006년 ‘기업가정신 교육에 대한 오슬로 어젠다’를 선포하고 교육을 통한 기업가정신의 함양을 결의했다. 이를 위해 각급 학교 단계별로 목표에 차별화를 뒀다. 초등학교 단계에선 창조성, 혁신, 비즈니스에 대한 간단한 개념 교육을 하고 중등학교 단계에선 소기업(mini-company)이나 가상의 회사를 실제 운영해 보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영국은 2004년 영국상공회의소 등 4대 경제단체가 공동으로 ‘엔터프라이즈 인사이트’라는 비영리 단체를 출범시켜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 프로그램을 연중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 플랜 경진 대회인 ‘메이크 유어 마크 챌린지(Make Your Mark Challenge)’, 어린 학생들에게 대출금 조로 10파운드씩을 나눠주고 한 달 동안 운영해 이익을 내도록 하는 ‘메이크 유어 마크 위드 어 테너(Make your Mark with a Tenner)’ 등이 대표적이다.
특별취재팀
▼“식당 개업도 좋지만 기술벤처 더 나와야” ▼ 척 이즐리 美스탠퍼드 경영과학공대 교수
“석·박사급 고급 지식 인력들이 창업 활동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척 이즐리 스탠퍼드 경영과학공대 교수(사진)는 “정보기술, 생명공학, 청정에너지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세계화 가능성이 높은 고성장 혁신 기술 벤처가 많이 나와 창업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정부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즐리 교수는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창업 활동은 세계 시장보다는 내수 시장, 하이테크마켓보다는 로테크 마켓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식당 개업도 의미 있는 창업이지만 성장의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미래의 성장 동력은 첨단 기술 분야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급 인력일수록 창업 외에 대안이 많다”며 “석·박사급 인력이 기술 상업화 작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인센티브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창업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게 정부 정책의 초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즐리 교수는 한국형 기업가정신 육성 환경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작정 미국을 벤치마킹하기보다는 한국 현실에 맞는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는 “미국이 기업가정신에서 세계적으로 앞선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기간 다양한 실험을 해 왔기 때문”이라며 “단순한 모방과 이식보다는 실리콘밸리가 하룻밤에 형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시기별 단계별로 기업가정신을 높이기 위한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며 “특히 자금 지원 등 창업 초기 단계에 효과가 있는 정책과 중견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데 필요한 정책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즐리 교수는 스탠퍼드 경영과학공대에서 운영하는 ‘스탠퍼드 기술벤처 프로그램(Stanford Technology Ventures Program)’의 핵심 교수진으로, 주 관심 분야는 첨단 산업분야 기업가정신 및 기술 전략이다.
특별취재팀
▽팀장 이방실 미래전략연구소 기업가정신센터장
▽팀원 김남국 김유영 박용 배극인 신수정 윤경은 임규진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동아일보 기업가정신센터 객원 연구위원 강진아 서울대 교수, 김종호 부경대 교수, 김학수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박유영 숭실대 교수, 반성식 진주산업대 교수, 배종태 KAIST 교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