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교육 선진국인 유럽 국가들은 제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공통된 사회적 인식이 있다. ‘직업교육을 선택한 학생이라고 해서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학교 성적이 좋으면 대학 진학을 우선시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학생이 희망하는 진로가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라면 주저 없이 직업학교를 택한다.》 ○ 연습에 집중할 환경 갖춘 핀란드 직업학교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한 직업학교에 다니고 있는 교민 최락호 군(17)은 “컴퓨터 그래픽 분야로 나가고 싶어 일반고가 아닌 직업학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일반 고교에서 배울 수 없는 전문적인 기술을 일찍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핀란드 예르벤패의 케우다 직업학교 실습실에서 학생들이 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기계의 작동 원리를 공부하고 있다. 이학교는 학교수업과 현장실습을 병행하는 ‘온더잡 러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예르벤패(핀란드)=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37km 떨어진 예르벤패에는 케우다(Keuda) 직업학교가 있다. 케우다는 예르벤패를 비롯한 7개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설립한 직업교육기관으로 7개 지역에 10개 학교가 있다. 각 학교는 저마다 주력 분야가 다르다. 예르벤패에 있는 학교는 기계 건축 자동차 의류산업 기술에 특화돼 있다. 이 학교에만 700명이 재학 중이며 10곳의 케우다 전체에 5500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이곳에 입학한 학생들은 공통교육을 이수한 학생들로 우리나라 고등학생에 해당한다. 3층 높이의 건물 내에 일반적인 강의실은 하나도 없다. 학생들은 차량정비소와 똑같은 실습실에서 실제 차량을 만지며 정비 연습을 한다. 기계 실습실에는 구형 밀링머신과 신형 컴퓨터수치제어(CNC)선반 장비가 갖춰져 있다. 이 학교에는 고등학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고교를 졸업한 학생들도 원한다면 이 학교에 들어와 전문기술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울라 푸루 씨(30·여)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간호사가 될 수 있었지만 꼭 의류디자인을 해보고 싶어 이 학교에 입학했다. 푸루 씨처럼 인문계고를 졸업한 학생은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다. 그는 “기술을 가진 디자이너가 되려면 직업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최선”이라며 “연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연중 80%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20%는 현장에서 일을 한다. 자기 전공에 맞춰서 큰 기업체부터 작은 식당에까지 실습을 나간다. 학교마다 실습을 많이 내보내는 업체가 있지만 학생이 개인적으로 실습 업체를 선택하는 사례도 많다. 이 학교 홍보부장인 아만다 하리넨 씨는 “실습생은 임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업체에는 도움이 된다. 게다가 학생이 실습을 원할 경우 업체는 거절할 수 없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주로서는 나중에 준비된 학생들을 채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실습생을 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실습을 나가 있을 때 교사는 현장을 번갈아 방문하면서 지도를 한다.
직업학교에 다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기거나 인문계고 졸업과정을 동시에 이수하는 것도 가능하다. 직업학교 학생의 10% 정도는 인문계고 과정으로 옮겨 대학에 진학한다. 직업학교 입학은 중학교까지 성적으로 결정된다. 건축이나 미디어 관련 학과는 일반계고보다 입학가능 점수가 높다. 9학년 졸업 후 5개 고등학교까지 원서를 내는데 원하는 학교에 떨어지면 10학년을 다니면서 재도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예르벤패(핀란드)=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 영국의 학생 중심 직업교육
영국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킹스웨이 칼리지 안 실습실에서 실무 교육과정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직접 요리 연습을 하고 있다. 영국에서 칼리지는 대학생이 아닌 고등학생들이 다니는 직업학교다. 런던=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킹스웨이 칼리지는 런던 도심에 네 개의 캠퍼스가 있다. 그중 하나는 빈센트 광장 앞의 ‘빅토리아센터’로 불리는 캠퍼스다. 100년 전 문을 연 이 캠퍼스는 세계 최고의 요리사를 양성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실제 현재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꼽히는 제이미 올리버(35)가 이 학교 졸업생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TV 프로그램과 여러 권의 요리 관련 베스트셀러 책을 낸 그는 국내에도 팬카페가 있을 정도로 유명 인사다.
지난달 30일 찾은 빅토리아센터에는 캠퍼스 안 실습장마다 ‘제2의 제이미 올리버’를 꿈꾸는 10대 학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이날은 마침 이 학교의 졸업식 날로 재학생들은 졸업식 파티에 제공할 음식들을 직접 만드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이 학교가 요리 분야에서 최고의 직업학교가 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이 학교의 니콜 바버 학장은 “철저한 학생 중심 교육이 가장 큰 요인”이라며 “그것이 또 우리 학교의 강점이다”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교사가 전체 요리 과정을 학생들에게 먼저 가르쳐준 뒤 모든 학생이 이를 반복해서 연습하도록 한다. 또 교사들에게 학생들의 모든 실습 과정을 꼼꼼히 지켜보면서 잘못된 부분을 계속 수정해 주도록 하고 있다.
바버 학장은 “졸업 후 요리사로 취업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졸업생은 자신의 식당을 연다”며 “이를 위해 우리 학교에서는 요리뿐만 아니라 식당 경영에 대해서도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학교는 졸업반인 3학년의 경우 2학년과 항상 같이 실습을 하도록 한다. 취업 후 주방에서 흔히 일어나는 동료나 후배 요리사와의 협업을 미리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영국은 5세부터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16세가 되면 대학에 진학할지, 취업을 할지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대부분 사립중등학교로 진학해 대학입학시험 과정을 준비한다. 사립중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은 매년 전체 중학교 졸업생의 30% 정도다. 영국의 중학교 졸업생들이 사립중등학교보다 더 많이 진학하는 곳은 웨스트민스터 킹스웨이 칼리지 같은 직업학교다. 매년 전체 중학교 졸업생의 절반 정도가 480여 개의 직업학교에 입학한다.
직업학교에서는 세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취업을 위한 실무 교육과정 외에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과정, 영어 연수과정을 운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졸업 후 취업을 위한 실무 교육과정에 다닌다. 실무 교육과정은 3년 과정으로 18세까지는 교육비를 모두 국가에서 지원한다. 또 2년째부터는 의무적으로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때부터는 일주일에 3∼4일은 현장에서, 1∼2일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독일과 같이 현장 실무 교육을 하는 동안은 취업한 업체로부터 일정한 보수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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