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창의성이 중요한 경쟁력으로 꼽히고 있다. 대학 입시 및 고교 입시에 입학사정관제가 확대·실시됨에 따라 내신 성적뿐 아니라 창의성이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됐기 때문. 특히 과학의 경우 교과 과정에 실험 설계 및 수행 활동이 대폭 늘어나면서 ‘어떻게 과학 창의성을 길러야 하나’란 고민에 빠진 학생들이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11일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성장잠재력과 창의적 재능을 갖춘 인재’라고 판단해 선발한 ‘2010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자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해 수상자 중 김재현 군(17·한국과학영재학교 3년)과 김은서 군(17·인천과학고 2년)은 각각 물리·화학분야와 물리·발명분야에서 재능과 성과를 인정받았다. 두 학생을 통해 과학 창의성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기를 수 있는지 알아보자. 》 ○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라!
김재현 군이 생각하는 창의성이란 ‘새로운 생각’이다. 2월 인천대 송도캠퍼스에서 열린 ‘2010 한국청소년물리토너먼트(KYPT)’ 대회. 김재현 군은 이 대회에 한국과학영재학교 학생 4명과 서라벌고 학생 1명으로 이뤄진 ‘조커’ 팀 소속으로 참가했다. 조커 팀은 1위를 차지했다. 그는 가장 어려웠던 문제로 ‘쇠공(steel balls)’ 문제를 꼽았다. 두 개의 큰 쇠공이 종이 같은 얇은 물질을 사이에 두고 충돌했다고 할 때 충돌한 위치에 불에 타서 구멍이 생겼다고 가정한다. 얇은 물질은 이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밝히는 것이 문제의 핵심.
쇠공이 종이에 부딪히는 시간은 몇만분의 1초이기 때문에 그때 일어나는 현상을 눈으로 직접 관찰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김재현 군. 고민 끝에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보기로 했다. 그는 먼저 쇠공의 성질을 파악했다. 그런 다음 쇠공의 성질을 고려해 쇠공 두 개가 충돌할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들을 떠올렸다.
“‘쇠공이기 때문에 두 개가 충돌했을 때 전기가 발생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후 ‘전기 펄스’(순간적으로 전압이 높이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현상) 수치를 측정하는 장비를 사용해 실험을 해봤죠.”
실험 결과 김재현 군은 쇠공 두 개가 충돌 시 접촉하는 정확한 시간과 과정 등을 알아냈다. 김재현 군은 “과학 문제를 풀다보면 실험을 설계하는 과정부터 난관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땐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가지 문제를 전혀 다른 각도로 봐야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라!
김은서 군과 김재현 군은 7월 2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제23회 국제물리토너먼트(IYPT)’ 대회에 다른 학생 3명과 함께 한국 대표팀으로 참가해 금메달을 받았다. 둘은 수상 비결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여 실험을 한 게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국제물리토너먼트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 학생 5명은 총 17문제 중 1인당 3, 4문제를 전담해 풀었다. 김은서 군은 “내가 맡았던 문제 중 ‘모래(sand)’ 문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물의 양에 따라 모래의 점도(粘度)가 달라지는 이유를 조사하는 것. 김은서 군은 “마른 모래에 비해 젖은 모래는 점도가 높다. 하지만 젖은 모래에 물을 일정량 이상 부으면 오히려 점도가 낮아지는 현상이 일어난다”면서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은서 군은 물의 점도를 결정하는 변수는 ‘물의 양’뿐이라는 전제하에 실험을 진행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다른 팀원들이 “물의 양 외에 다른 변수를 고려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순간 아차 싶었어요. 실험을 하는 내내 제 생각이 곧 정답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죠.”
김은서 군은 팀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모래 입자의 크기’ ‘액체의 종류’ 등 여러 변수를 뽑아냈다. 변수가 늘어남에 따라 여러 방법을 고안해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대성공. 김은서 군의 실험방법은 대회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는 “내가 담당한 문제라고 내 방식만 고집했다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문제를 풀 때 여러 사람의 생각을 귀담아들으면 창의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라!
김재현 군과 김은서 군은 모두 과학에 능통하다. 김재현 군의 꿈은 엔지니어이며 김은서 군은 물리학자가 꿈이다. 하지만 이들이 꼭 과학만 공부하는 건 아니다. 두 학생은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선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도 사회, 인문, 경제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현 군은 과학뿐 아니라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해 학기 초 우연히 교내 도서관에서 ‘맨큐의 경제학’이란 책을 읽은 게 계기가 돼 주도적으로 교내 경제학 동아리를 만들었다. 1학년 말에는 동아리에서 쌓은 경제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 교외 경제대회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과학 공부를 하는 데 인문학 공부가 도움이 될까. 과학 이론을 사회 현상에 적용하면 이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고 이는 새로운 과학적 호기심이 되기도 한다는 게 김재현 군의 설명이다.
“어느 날 영화를 보다 ‘컴퓨터 회로가 뇌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로봇에게도 자아가 생길 수 있을까? 이런 로봇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로봇을 만들어 실험을 해볼 순 없었지만 ‘생물학과 생물철학’ 등 과학과 인문을 함께 다룬 책을 읽으며 궁금한 점들을 해결했어요.”(김재현 군)
김은서 군 역시 인문학에 흥미가 높다. 얼마 전엔 기숙사 친구와 ‘히틀러의 통치’란 주제로 토론을 했다. 그는 “역사나 소설책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과학적 이론을 사회에 적용시킨 예를 많이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두 학생이 말하는 ‘창의성 높이는 공부법’
김재현 군 “과목을 바꿔가며 공부하면 능률 올라요”
저는 이해하기 쉬운 과목은 2∼3일을 몰입해 공부하는 편이지만, 어려운 문제들은 모아뒀다가 10∼30분마다 번갈아가며 풀어요. 어려운 문제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으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금세 지치거든요. 짧은 시간 여러 문제를 번갈아 풀어보면 어느 순간 흥미가 생기고 창의적인 풀이법이 나오기도 하죠. 특히 오랜 시간 앉아있어야 하는 시험기간에 효율적인 방법이에요.
김은서 군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땐 엉뚱한 상상을 해 봐요”
수업이 끝난 뒤 피곤할 때는 잠깐 누워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요. 머릿속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거예요. 종류는 전쟁, 과학, 그날 수업내용 등 다양해요. 여러 수업시간에 들었던 원리, 선생님께서 하신 농담,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엉키면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와요. 상상하다보면 공부한 내용을 다시 떠올리게 돼 자연스럽게 복습 효과도 생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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