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4명 숨진 화재, 범인은 13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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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2일 03시 00분


자기집 불지른뒤 “어디에 불났어요?… 우리 엄마 어떡해…” 통곡까지
“춤-사진 좋아했는데 판검사 되라 강요… 골프채로 자주 때리는 아버지가 싫었다”

이모 군이 불을 질러 전소된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C아파트 13층 이 군의 집 거실. 그을음이 현관 바깥까지 번져 있었다. 사건 현장을 둘러본 경찰은 “불을 끈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집 안에선 휘발유 냄새가 진동했다”고 말했다.
이모 군이 불을 질러 전소된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C아파트 13층 이 군의 집 거실. 그을음이 현관 바깥까지 번져 있었다. 사건 현장을 둘러본 경찰은 “불을 끈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집 안에선 휘발유 냄새가 진동했다”고 말했다.
“판검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아버지만 죽이면 잘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술고 진학에 반대하면서 폭력을 행사한 아버지에게 앙심을 품은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집에 불을 질러 일가족 4명을 숨지게 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이 학생은 범행 이틀 전 휘발유를 미리 사놓았고, 범행 후 폐쇄회로(CC)TV를 피하기 위해 계단을 이용하고, 불이 난 집을 보면서 통곡을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21일 오전 3시 35분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C아파트 13층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할머니(71), 아버지(46·무직), 어머니(38), 여동생(9) 등 일가족 4명을 숨지게 한 이모 군(13)을 존속살해 및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 군은 이날 취재진에게 “평소 춤과 사진을 좋아했는데 아버지는 판검사가 되라며 골프채로 자주 때렸다”며 “전날 밤에도 아버지가 골프채로 배를 찌르면서 뺨을 때려 범행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나의 이름이나 사생활 등 개인정보를 보도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군 아버지는 의류유통업을 하다가 최근에는 집에서 쉬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 군은 범행 이틀 전인 19일 오후 집 근처 주유소에서 학교 과학시간에 필요하다며 휘발유 8.5L를 구입해 자신의 방에 숨겨놓았다가 가족이 모두 잠든 21일 오전 3시 35분 큰방, 거실, 작은방에 차례로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 집에서 함께 살며 의류판매업을 하는 고모 이모 씨는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동대문시장 의류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어 화를 면했다. 집은 전소됐으며 시신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정도로 불에 탔다.

범행 직후 CCTV를 피해 계단으로 아파트를 빠져나온 이 군은 1시간여 동안 집 주변을 배회했다. 그을리고 휘발유 냄새가 나는 점퍼는 노숙인에게 벗어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군은 소방차와 경찰이 출동하자 아파트로 돌아와서는 “어디에서 불이 났어요?”라고 경비원에게 물었다. 이어 “우리 집에서 불이 났다”면서 “우리 엄마 어떡해”라고 말하며 통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군만 혼자 집 밖에 있었고 몸에서 휘발유 냄새가 나고 얼굴에 그을음과 화상 흔적이 있는 점을 수상히 여겨 이 군의 행적을 추궁한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이 군은 처음에는 “홍익대 클럽 주변에서 혼자 춤을 추다가 늦게 귀가한 것”이라며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군이 이틀 전 휘발유가 든 생수통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과 범행 뒤 생수통을 현관 근처에 버리고 달아나는 장면이 담긴 CCTV를 확보하고 있었다.

경찰은 이 군이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여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서울가정법원 소년부에 송치했다. 경찰은 이 군에게서 특별한 정신병력이나 전과가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또 이 군이 일가족을 살해한 후 방화했을 개연성도 있다고 보고 시신을 부검하기로 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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