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안 다니고 혼자 공부? 중1때 진로 확정해야 한다? 체험-독서내용 많으면 유리?
교과부 자기주도학습지침서 들여다보니
그래픽 임은혜 happymune@donga.com
《“자기주도학습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공부하는 게 자기주도학습인가요?”
“학원은 안 다니고 집에서만 공부해야 자기주도학습인가요?”
“특목고 자기주도학습전형은 도대체 학생을 무엇으로 평가하나요?”
2011학년도부터 특수목적고를 비롯한 일부 고교 입시에 ‘자기주도학습전형’이 도입됐다. 사교육을 없애고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들이 자기주도학습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 실체에 대해선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한국교육개발원과 함께 자기주도학습 지침서 ‘내 공부의 내비게이션! 자기주도학습’(사진)을 발간했다.
약 180쪽에 걸쳐 △자기주도학습전형의 시행 배경 △자기주도학습의 개념 △자기주도학습 전략 등을 소개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자기주도학습에 관해 정말 궁금해하는 점들을 콕 집어서 지침서 내용을 토대로 상세히 풀어봤다.》
“자기주도학습은 학생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걸 뜻하나요? 학원을 하나라도 다니면서 공부하면 자기주도학습이 아닌 건가요?”
자기주도학습은 학생 혼자서만 공부한다는 ‘독학’의 개념은 아니다. 학생 스스로가 목표를 정하고 계획하고 점검하는 학습방식이다. 웬만큼 강한 의지를 지닌 학생이 아니고서야 처음부터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부모와 교사의 도움과 지지가 필수적이다.
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무조건 자기주도학습을 안 하는 학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자기주도학습이 지향하는 바는 사교육 억제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사교육을 원천 봉쇄하기란 불가능하다.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 시범학교’인 서울 대왕중에서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구본주 기술가정 교사는 “교과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다닌다 하더라도 수업 내용을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나만의 공부시간’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면서 “학원 스케줄에 수동적, 의존적으로 끌려가는 것은 자기주도학습이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중학생의 경우 학교 및 학원 수업 시간, 먹고 자는 시간 등을 빼고 학생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가용 시간’이 일주일 평균 40∼50시간 이상은 되는 것이 좋다. 이 중 20% 정도의 시간은 꼭 성적을 올리고 싶은 과목을 공부하는 데 사용하도록 습관을 들이면 효과적인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다.
단, 고입 원서를 쓸 때 사교육을 드러내면 안 된다. 자기주도학습에서 인정하는 사교육은 입시 목적이 아닌,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필요와 의지에 의해 교과 내용을 보완하는 차원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아들이 다니던 국어·영어·수학 종합학원을 끊은 뒤로 평균 성적이 8점이나 떨어졌어요. 자녀를 자기주도적학습자로 만들려면 어떻게 지도해야 하죠?”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발간한 자기주도학습 지침서에 따르면 자기주도학습의 핵심은 학생이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 계획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사진은 자기주도학습 시범학교인 서울 성사중 교사들의 자기주도학습에 관한 연수 모습. 사진 제공 서울시 교육청 자기주도학습의 핵심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스스로 계획해서 공부하기’다. △학기별 계획 △월간 계획 △주간 계획 △일일 계획으로 나누어 학습 계획표를 작성하는 것이 자기주도학습의 시작이다. 초기엔 이 과정에 학부모가 동참하는 것이 좋다.
학기별 계획은 해당 학기에 본인이 받고 싶는 성적이나 잘하고 싶은 과목을 정해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반 10등 안에 들겠다’ ‘수학 점수를 10점 이상 올리겠다’고 적어 두는 식이다. 주간 계획은 공부해야 할 각 교과목의 대단원과 소단원을 써 놓는다. 공부하고 있는 부분이 교과목의 흐름상 어느 곳인지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 다음 일주일간의 계획된 분량을 끝내려면 하루에 얼마만큼의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계산해 일간 계획을 세운다. ‘7시부터 8시까지 수학 문제집 20∼25쪽’과 같이 자세히 적는다.
“자기주도학습전형 설명회에 가면 중1부터 진로를 확실히 정해 관련 활동을 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고교 입시에 유리하다더군요. 하지만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게 아이의 장래희망인데, 중간에 꿈이 바뀌면 입시에 불리하지 않나요?”
일선 교사들과 전문가들은 “확답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입시전형이 올해 처음 도입돼 아직 결과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자기주도학습전형은 진로와 관련한 목표가 있는 학생을 원한다는 것이다. 중간에 바뀔 수는 있다. 하지만 아예 없으면 안 된다. 학생들의 장래희망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바뀌기 마련이다. ‘진로를 무엇으로 정했느냐’는 것보다 ‘학생 스스로 얼마나 진지하게 진로 탐색의 과정을 거쳤느냐’를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꿈이 불분명하거나 아예 없는 자녀들에게 학부모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한국직업정보시스템(know.work.go.kr)’ ‘커리어넷(www.careernet.re.kr)’ 등 직업 정보 사이트에 자녀와 함께 방문해 진로를 탐색해보자. 롤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의 인터뷰 기사를 출력하거나 자서전을 구입해 학습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도 좋다. 진로 탐색 과정과 자녀의 소감을 기록해 두면 고교 입시에 유리한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다.
“비교과 활동이 중요해졌는데 체험활동, 봉사활동, 독서이력은 실적이 많을수록 좋을까요?”
고교 입시의 학습계획서 작성 서식을 보면 봉사 및 체험활동 2가지, 인상 깊게 읽은 책 2권에 대해 쓰도록 되어 있다. 무조건 많은 활동보다는 수는 적더라도 지속적이고 내실 있는 활동이 중요한 셈이다. 비교과 활동 역시 입시를 목표로 끌려가듯 준비한 게 아니라 자신의 흥미에 따라 주도적으로 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 블로그, 카페 활동은 학업에 투자하는 시간을 적게 뺏기면서도 자신의 활동을 구체적 증거로 남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지침서에 긍정적인 사례로 소개된 Y 양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그는 사진 찍기를 좋아해 초등 5학년 때부터 ‘우리 마을의 이모저모’라는 블로그를 운영해 왔다. 수시로 지역의 특성을 인터넷, 책,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조사한 뒤 직접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 처음에는 우리말로 마을을 소개했지만 중학교 입학 후 외국인에게도 자신의 마을을 알리기 위해 영어로 번역한 글을 같이 올렸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에게 아름다운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고 외국의 문화를 다시 한국에 전하는 외교관의 꿈을 키우게 됐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그는 외고 진학을 결정했다.
Y 양의 활동은 특목고 진학이 목표의 최종점이 아니라 더 큰 목표를 위한 과정임을 증명해 준다. 짧게 일회성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므로 설득력이 있다. 좋은 포트폴리오를 만들려면 교내 동아리나 교외 체험 프로그램에 두루 참여해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활동을 찾아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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