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특무부대에 검거돼 간첩죄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죽산 조봉암 선생(1898∼1959). 대법원이 최근 죽산 선생이 이끈 진보당 사건에 대한 재심 결정을 내려 조만간 법원 재심을 통해 죽산 선생의 결백이 입증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맞춰 죽산의 고향이자 정치무대였던 인천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한 추모 및 기념사업이 추진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천지역 정치 거목이었던 죽산 조봉암 선생(아래 얼굴사진). 1959년 간첩죄로 사형됐지만 최근 대법원의 재심 결정이 내려져 무죄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서울 중랑구 망우동 공원묘지에서 열린 50주기 기념행사에는 각계 인사가 참여해 죽산의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대법 ‘진보당 사건’ 재심결정에 결백입증 가능성 높아져
○ 인천 곳곳에 남아 있는 죽산의 발자취
현재 강화읍사무소 마당인 인천 강화군 관청리 550은 죽산 선생의 생가 터다. ‘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회’는 2001년 6월 강화대교 인근의 강화읍 갑곳리 진해공원에 죽산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웠다. 당시 강화도 주민들과 새얼문화재단 회원들이 성금을 모아 추모비를 제작했다.
1898년 강화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죽산은 16세 때 강화군 면서기로 일하다가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한 이후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중국 상하이에서 한인청년동맹 조직 사업을 벌이다 경찰에 체포돼 신의주에서 7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출옥 후 인천강미조합에서 일했고, 광복 후 인천에서 활발한 정치활동을 펼쳤다.
그가 장녀 호정 씨(83)를 낳은 곳은 인천 중구 도원동 12이다. 경인전철 도원역과 가까운 단독주택지다. 호정 씨는 “도원동 집에서 인천여고를 다녔기 때문에 어릴 때의 추억이 많은 곳”이라며 “지난해 한 번 다녀왔는데, 허름한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서울에 살고 있으며 2년 전 부친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를 했다.
죽산은 도원동에 살면서 인천의 정치 거목으로 성장했다. 광복이 되자 인천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했고, 공산당 활동을 청산한 뒤 좌우합작운동을 주도했다. 1948년 당시 인천부 을구에서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제헌국회의원 2년 임기를 마치자마자 1950년 2대 국회의원으로 다시 당선돼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52년 2대 대통령선거, 1956년 3대 대통령선거에 잇따라 출마했으나 연이어 2위로 낙선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1958년 ‘진보당 사건’으로 검거된 뒤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 명맥 이어온 죽산 기념사업
서울 중랑구 망우동 공원묘지에 있는 죽산의 묘 주변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묻혀 있다. 지난해 죽산 50주기 추도식은 각계 인사가 참여해 비교적 성대히 치러졌지만 그 전에는 친지들 몇 명만이 기일을 맞았다. 매년 기일 때 죽산의 묘를 찾고 있는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은 “인천의 정치 거목이었던 죽산 선생이 무죄 선고를 받게 되면 인천 각계에서 그를 인천의 정신적 구심으로 삼는 운동이 본격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얼문화재단은 2000년 10월 ‘죽산 조봉암의 정치적 리더십과 인천’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당시 심포지엄 토론자들은 “조봉암 선생을 단순히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적이자 간첩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바꿔야 할 때”라며 “죽산은 민주주의 거름이 된 거목이자 평화통일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죽산 선생을 재해석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2007년 9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죽산 선생의 사형을 ‘비인도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으로 규정해 국가 차원의 사과와 피해 구제, 명예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권고했다. 같은 해 10월 죽산의 고향인 강화도에서는 ‘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회’ 발기인 모임이 이뤄져 생가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죽산 선생 50주기 때에는 여야 국회의원 130여 명이 “헌정사상 첫 ‘사법살인’ 희생자로 꼽히는 조봉암 선생의 명예회복이 제자리걸음”이라며 명예회복을 청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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