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대신 휴대전화만 ‘입원’… 의사 낀 20억대 보험사기 적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6일 03시 00분


발신추적 피하려 병원에 보관

“남한에서는 보험을 들면 부자가 될 수 있다.” 새터민 출신인 장모 씨(49·여)는 같은 새터민 출신 보험설계사 홍모 씨(42·여)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장 씨는 홍 씨의 권유로 보험에 들고 휴대전화를 새로 개통했다. 그런 다음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S한방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밟고, 휴대전화를 놓고 왔다. 장 씨의 휴대전화가 ‘병원에 입원한’ 동안 보험금이 장 씨 통장에 입금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사정이 어려운 새터민 등을 병원에 거짓 입원하도록 한 뒤 허위 진료기록부를 꾸미고, 이런 사실을 속이기 위해 가짜 환자의 휴대전화를 병원에 가져다놓는 수법으로 보험금과 국민건강보험 급여 20억여 원을 가로챈 보험설계사 김모 씨(56·여)와 S한방병원 김모 원장(45)을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홍 씨 등 공범 7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원장 등은 2008년 10월부터 올 6월까지 S한방병원에 환자들이 수주일씩 입원한 것처럼 허위 진료기록을 만든 뒤 생명·손해보험사 43곳과 건강보험공단에 치료비 등을 청구했다. 이런 수법으로 S한방병원 측 의사(5명)와 사기에 가담한 보험설계사(4명)가 각각 3억여 원, 보험가입자들은 14억여 원을 챙겼다.

이들은 경찰이 수사에 들어갈 것에 대비해 ‘휴대전화만 입원시키는’ 기발한 수법을 동원했다. 경찰이 입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 발신지 추적을 한다는 말을 듣고 환자들에게 새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한 뒤 병원에 보관하면서 의사나 간호사가 사용하게 한 것. 실제로 경찰은 병원에서 환자들 대신 수십 대의 주인 없는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간호사 정모 씨(40·여)는 간호일지에 ‘TV를 보고 있음’, ‘항상 피곤하다고 함’하는 식으로 거짓으로 환자일지를 작성했다. 김 원장도 8건의 보험에 가입한 뒤 올 4월 서울 강동구 성내동 소재의 한 양방병원에 2주간 허위로 입원을 하고 400만 원의 보험금을 타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었다”며 “김 원장의 허위 입원을 도운 양방병원 의사 4명과 새터민 25명 등 가짜 환자들도 모두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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