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프랑스가 12일 ‘5년마다 갱신이 가능한 대여’ 방식으로 외규장각 도서의 사실상 반환에 합의함에 따라 1866년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가 144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오게 됐다. 1978년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지 32년, 1991년 11월 한국과 프랑스 간 반환 협상을 시작한 지 19년 만이다.
양국 간 협상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11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한국으로 출국할 때까지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12일 한-프랑스 정상회담 직전까지 대여와 관련된 여러 안을 놓고 양국 간 실랑이가 계속될 정도로 난항을 겪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출국 직전 대여를 반대하는 프랑스 문화장관과 찬성하는 외교장관에게 최종 의견을 물은 뒤 대여에 합의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반환 협상은 정부가 올해 3월 외규장각 도서의 영구대여를 프랑스 측에 공식 요청하면서 다시 본격화됐다. 프랑스는 외규장각과 상응하는 한국 문화재를 교환하는 상호대여 방식은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양보하겠으나 영구대여는 자국법 위반이라며 완강히 거부했다. 대신 프랑스는 5년마다 갱신이 가능한 대여를 제시하고 별도의 절차 없이 대여 기간이 자동 연장되도록 구두로 약속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 외교통상부는 이 제의를 긍정적으로 검토했지만 문화재청은 영구대여를 보장할 수 있는 단서 조항의 문서화를 요구했다. 협상 막판에 한국은 ‘대여의 종료는 양국 정부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국내법 위반과 문화계 반대를 들어 거듭 난색을 표시했다.
프랑스는 이번 도서 반환이 프랑스 내 다른 약탈 문화재를 다른 나라에 돌려줘야 하는 선례가 될 것을 우려했다. 합의문에 ‘조선 왕실의 의례를 담은 의궤는 한국 국민의 정체성의 일부, 한국 국민의 얼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상황에도 원용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프랑스는 구두 약속에서도 ‘자동’이라는 표현 대신 ‘지속적으로 연장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영구대여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제의를 수용한 것은 프랑스의 선의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문식 단국대 교수는 “약탈문화재라는 게 명확한 데도 완전히 돌려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차후 다른 약탈 문화재 반환 협상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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