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여권 만들어줄테니 외국인카지노서 한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15일 03시 00분


강원랜드 고객에 도박 알선… 카지노 직원 등 28명 기소

서울 광진구의 한 호텔에 입점해 있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업체 P사의 박모 팀장(54)과 정모 차장(43)은 2008년 6월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박모 씨(43)에게서 강원랜드 VIP 고객 명단을 입수했다. 박 팀장 등은 강원랜드 인근 은행 직원을 통해 VIP 고객의 연락처를 확보해 이 가운데 건설업체 대표 A 씨를 직접 만났다. 이들은 “남미 국가 영주권을 만들어 줄 테니 강원랜드까지 가지 말고 서울의 외국인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라. 영주권 발급 비용은 우리가 대겠다”며 A 씨를 꾀었다. 볼리비아 파라과이 등 남미 국가의 영주권 관련 서류가 위조하기 쉽다는 점을 노린 것이었다.

A 씨는 순순히 동의했다. 박 팀장 등은 심모 씨(41) 등 카지노에 고객을 소개하는 에이전트 2명에게 수익의 10∼15%를 주기로 약속하고 A 씨에게 볼리비아 영주권이 있는 것처럼 서류를 위조하도록 했다. A 씨는 이들에게서 받은 서류를 외교통상부에 내고 거주여권을 발급받았다. 거주여권이란 외국 영주권을 취득해 해외로 이주한 내국인에게 발급하는 여권으로 이 여권이 있으면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출입할 수 있다.

A 씨는 카지노를 드나들며 330억 원을 걸고 ‘바카라’ 게임을 즐겼고, 모두 41억 원을 잃었다. 이후에도 박 팀장 등은 강원랜드 VIP 고객들에게 차례로 접근해 같은 방법으로 외국인 카지노에서 도박을 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거주여권 발급이 어려우면 브로커를 통해 외국여권이나 거주여권을 위조해 만들어 주기도 했다.이 같은 불법 호객행위에 넘어간 내국인은 총 21명. 이 중에는 연예기획사 대표, 골프장 사장 같은 재력가뿐만 아니라 주부도 있었다. 이들은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까지 총 170억여 원을 탕진했고 일부는 주민등록이 말소되거나 도박중독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희준)는 내국인들을 해외이주자로 신분을 세탁해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도록 알선한 혐의(도박개장 등)로 박 팀장과 정 차장 등 2명을 구속기소했다고 14일 밝혔다. 또 외국 영주권 서류를 위조해 수수료를 받아 챙긴 혐의(공문서 위조 등)로 심 씨 등 카지노 에이전트 2명과 여권위조 브로커 3명을 구속기소하고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도박을 한 내국인 21명을 상습도박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2007년까지 단 한 건도 없던 볼리비아 영주권자에 대한 거주여권 발급 건수가 2008년 13건, 지난해 130건으로 크게 늘어나는 등 일부 남미 국가 영주권자의 거주여권 발급 건수가 급증한 것에 주목해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드나든 내국인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 사건이 불거지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8월 해외 영주권자가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출입할 때는 거주여권과 함께 재외국민등록부 등본을 제시하도록 지침을 바꿨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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